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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아침에 일어나 요리를 하다


잠을 설쳤다. 잠 드는 것도 힘들어서 두시간여를 뒤척이다 한시가 넘어 잠들었고, 5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이 내는 소리에 깨서 이후로 잠들지 못했다. 안락의자에 앉아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배가 고파졌다. 밖이 아직 깜깜할 때 주방으로 가서 불을 켰다. 어젯밤에 잠이 안와서 보던 동영상에서 배운 비건 스콘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케이크는 여러번 구워봤는데, 손으로 반죽을 치대는 일 자체를 처음 해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끌미끌하다가도 밀가루만 있는 건조한 부위를 섞을 때는 다시 뽀송해지고, 손에 닿는 느낌이 재밌었다. 비건 스콘에는 밀가루와 식용유, 코코넛밀크, 설탕, 베이킹소다가 들어간다. 아 지금 쓰면서 깨달았는데 소금도 아주 약간 넣어야 하는데 까먹었다. 부디 큰 지장 없기를. 코코넛밀크 캔을 딴 김에 남은 당근과 사과로 당근사과 코코넛크림스프도 끓였다. 어차피 냉장고에서 반죽을 휴지하는 동안 시간이 남았다. 당근사과코코넛크림스프는 내가 즐겨해먹는 간단한 스프인데, 원래 생강도 넣어야 하지만 없어서 생강가루와 시나몬가루를 좀 넣어 대신했다. 그래도 맛있게 잘 되었다. 크림이 들어간 스프는 간만 잘 맞으면 어지간해서는 맛있는 것 같다.


아침에 게으른 내가 눈 떠서 일 시작하기 전에 요리를 한 것은 아마도 거의 난생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평소에 아침도 안먹다가 주말에 노력해서 정오가 다 되어서야 첫 끼니를 먹는 수준이다. 요즘 난생 처음 하는일이 몇 가지 있다. 12월 28일에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피트니스 블렌더의 5일짜리 운동 챌린지 비디오를 정말 5일동안 매일 빠짐없이 따라했다. 5일 연속 운동을 한 것도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5일째 날이 1월 1일이었다. 연말과 새해 첫 날까지 쉬지 않고 운동을 하다니 신기하다. 나는 분명히 운동을 싫어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땀을 흘리면 기분이 좋고, 평소에 거기 붙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던 근육이 피로해짐을 느끼는 것이 즐겁다. 집에서 혼자 하는 운동이 성향에 잘 맞아서 정말 꾸준히 하고 있다. 나는 그냥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서 운동하는게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삼십대 중반이 되었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완전히 잘 알지는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한 몸 비틀고 움직여 가며 운동 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가진 아파트, 요리 할 의욕이 나는 주방을 가진 지 2년정도 되었다. 아마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될 경우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말부터 쭉 든 생각인데, 이번에 학생을 벗어나고 나면 양적으로도 좀 성장해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 보고 싶다. 돈이 있어야만 경험 할 수 있는 것들을 체험해 보고 싶다.


일기를 쓰는 동안 다 구워진 스콘은 다행히 약간 싱거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굉장히 맛있게 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