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같이 저녁 먹을 때 틀어놓는 골목식당이 둘 다 한국을 교차로 방문한 덕에 몇 주 밀려있었다. 그리고 어제서야 모든 밀린 편을 따라잡았다. 과연 타임라인에서 난리가 났던 것처럼 기획의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었다. 시청자 혈압올리려고 (사실 보는 내내 백대표 울화통이 걱정이 될 만큼) 일부러 그렇게 편집을 하는건지, 아님 그냥 이상한 사람들인건지 헛갈릴 정도다. 그리고 빚을 내던 돈을 모으던 스스로의 힘으로 주체적으로 창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너무 확실하게 보였다. 절실함이 사람을 의식적으로 깨어있게 만들고,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노력해야만 발전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2년간 많이 변한 남편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의식적으로 절실하게 집중해서 뭔가를 성취하고자 한 적이 있나? 일단 지난 2년간은 언어와 새로운 학문적 지식 습득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고, 지금은 마무리 단계라 논문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끝나고 나면 다시 언어구사력을 숙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단기 목표는 항상 나도 모르는 새에 구체적으로 세워놓고 사는 것 같아 다행이다.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라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1편을 보았다. 2편을 언제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재미는 있었는데 미국 사람을 솔루션 해주는거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낯설었다. 도대체 왜 방문 때마다 서로 비명을 지르며 반겨야 하는거지? 스트레스에 못이겨 울음을 터뜨리는 가족을 보니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미국 사람들 감정표현 스타일은 내게 있어 좀 대책없고 가끔 맥락을 따라가기 벅차서 공감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이프 스타일도 많이 다르고, 집 크기나 구조부터 굉장히 달라서 내가 거기서 뭘 배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더라. 게다가 정리정돈이나 미니멀리즘 책, 드라마를 몇 번 봐서 우리집은 정돈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독일로 오면서 강제 미니멀리즘 생활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내 전반적인 생활을 운용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된 사건이었다. 3년간의 신혼살림을 다 정리하고 남편과 고양이 둘과 독일로 넘어 올 때, 27인치 캐리어 두개, 기내용 캐리어 두개가 우리 짐의 전부였다. 그 짐 중에 30% 이상의 부피를 차지하는 건 고양이 짐이었다. 공항과 비행기와 호텔에서 쓸 모래, 사료, 물, 간식, 그릇, 스크레처 등을 다 챙겨왔으니. 껴입을 옷도 별로 없어서 첫 겨울이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을에 한국에서 부쳐주신 겨울 옷 한 박스가 이듬해가 되어서야 도착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짐정리를 할 때 정말 많은 것을 버리고 팔았다. 식기, 주방용품, 옷, 컴퓨터, 만화책, 책, 씨디, 디브이디, 가전제품, ... 이렇게 작은 집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들어 있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중에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도 있었고, 가슴아프게 버리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덕분에 독일에 와서 다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살 때마다 신중하게 고를 수 있는 우리만의 기준이 섰다.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정말 활용도도 높고, 마음에 쏙 드는 것들 뿐이다. 덕분에 돈도 많이 절약했다. 돈을 좀 더 쓰더라도 장기적으로 절약하게 되는 좋은 품질의 물건, 예를 들면 스테인레스로 된 프라이팬이나 냄비 그리고 매일 쓰는 가전들, 반면 내구성보다는 제 기능에 충실하고 예쁘면서 가격이 비싸지 않은 물건, 예를 들면 이케아에서 산 의자나 조명, 수납함 등 이런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 우선순위도 구분해서 구입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정리의 핵심은 물건을 많이 두지 않는거다. 겨울이 끝날 즈음에는 옷 정리도 한 번 해야겠다.
이렇게 살다보니 사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가지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꽤 구체적으로 모델명까지 알거나 또는 대략적인 가격대와 제품군으로 위시리스트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 것들을 언제 사게 될 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 중 대부분이 일단 좀 큰 주방을 가진 뒤에 갖고 싶은거니까 이사를 가거나 하지 않으면 살 일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집이 너무 마음에 들고, 렌트비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이라 언제 이사를 갈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사고 싶은 욕구와 가지고 싶은 것은 있는데 사고 싶은 것이 없다니 이런 기분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뭐 일단 돈부터 벌어놓고 고민하면 되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