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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일상, 기본, 뭐 이런 것들

맑은날이면 우리집은 오전 8시부터 11시경까지 거실에 해가 잘 든다.

그러면 고양이들이 창문으로 쪼개져 들어온 햇빛 조각에 하나씩 누워있다.

온몸으로 볕을 쬐고 있음을 나타내는 듯 다리도 쩍벌리고, 최대한 몸의 많은 면적이 골고루 햇빛을 받도록 자세를 취한다. 눈부시니 눈은 지긋이 감고 있다.

두 고양이가 볕에 똥꼬라도 살균하듯이 다리 쩍 벌리고 누워있는 광경이 진짜 가관이다.


그러다가 해가 움직이면 지들도 따라서 자리를 슬금슬금 옮긴다. 물론 절대 일어나서 옮기는건 아니고, 구른다.

그러다가 둘이 몸이 닿기라도 하면 갑자기 싸우기 시작한다.

물고 때리고 발길질하는데, 평소에 비해 격한 편도 아닌데 소리는 더 지른다.

싸우는 몸짓에서도 나른함이 느껴진다.

지들 둘끼리만 싸우는건 아니고, 딩굴대다가 몸에 부딪히는 장난감(지가 물어다 옆에 둔 것), 가구 등에 시비를 건다.


오전시간에 수업이나 할 일이 없었던 적이 이번주가 올해들어 처음이라서 고양이들을 관찰하고, 일기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곳에는 정말 오랜만에 쓰지만, 일기는 계속 메모장에 써오고 있었다.

오늘은 감기도 좀 좋아진 것 같아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오랜만에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니까 감동스러울만큼 맛있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엄청 맛있게 내려진 것은 아닌데, 약 일주일만에 내가 내린 아침 커피를 마시니까 밀려오는 편안한 기운과 함께 커피향이 한결 포근하게 느껴졌다.


카페인이 들어가니까 머리도 더 잘돌아가는 것 같다. 이건 과학적인 사실인 듯 하다.

감기에 걸려서 자체적으로 커피를 쉬는 동안, 금단현상인지는 모르겠는데 두통이 심했었다. 

잠시 카페인을 끊고 살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침마다 너무 행복한 이 30분-1시간 가량의 시간을 대체해서 채울 것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끊기 힘들 것 같다. 


일상, 기본, 뭐 이런 것들이 소중하다고 느꼈음을 상기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소중하다'는 표현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각에 완전히 들어맞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종종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원해서 돈과 시간을 써서 여행을 떠나서 신선함을 즐겨놓고, 

돌아와서는 일상이 소중했고, 일탈은 일상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환기된 시야를 가지고 다시 일상에 돌아와보니,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던 풍경에도 매일 새롭고 재미있는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 평소의 나의 삶에 계속해서 이야기거리, 구경거리를 만들어 가도록 일상을 취향에 맞게 다듬고 가꾸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면 공간에 커피향이 퍼져서 똑같은 풍경이 더 우아하게 느껴진다.

저녁을 먹고 나서 어둑해지는 거실에 전등대신 초를 켜면 좋은 향과 은은한 불빛속에서 더 편히 쉴 수 있다.

쇼파나 침구를 깨끗하게 관리하면 집안에 먼지도 적고, 쉬고싶을 때 아무때나 걱정없이 몸을 뉘일 수 있다.

금이 간 유리컵에 월계수 나무가지를 꽂아두니 단조롭던 탁자 위 풍경에 생기가 돈다.

큰맘먹고 투자해서 산 좋은 매트리스에서, 새로 세탁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이란 말 말고 뭘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은 내가 내 공간을 통제·관리 할 온전한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그 일상의 핵심인 듯 하다.

여행을 통해 다른사람의 일상을 엿보고, 좋은 취향은 배워오는 것일 뿐이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여행의 시간을 일상과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결국 여행도 내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하기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이건 전혀 딴소린데, 고양이와 함께 산 뒤로는 고양이가 걱정되고 보고싶어서 긴 여행은 무리인 점이 아쉽다. 왜냐하면 얘네들 매일매일 엄청 색다르고 귀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