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온 뒤로 점점 내 언어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
외국에 나와 있으면 한국어 능력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모국어니까 뭐 가끔 특정 표현이나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정도라서 아직은 불안함을 느낄 정도는 아닌데,
영어가 상당히 줄었다. 정말 이상하지. 매일 어떻게든 영어를 쓰고, 영어로 된 강의나 자료를 접하고 사는데 말이야.
사실은 영어 실력이 줄었다기 보다는 내 진짜 실력을 목도하게 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일을 영어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해내야 하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던 것일 뿐, 사실 외국어 실력이란 측정조차 쉽지 않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발음이 많이 어렵다고 느낀다. 그동안은 주변 한국인들 중에서는 그나마 미국식 굴러가는 발음을 덜 쑥스러워하고 말했던 탓에 그다지 내 발음이 구리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듣기에는 역시나 한국어로 굳어진 내 구강구조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게으른 발음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표현도 어색할테고, 발음까지 이상하니 어렵사리 뱉어낸 말을 상대가 못알아들을 때마다 자신감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아 이건 못알아 들을게 뻔해'라고 생각하는 의견들은 말하지 않아 버리기 일쑤고, 그러다보니 대화의 흐름이 점점 관심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집중력도 흐려져 듣는 것조차 잘 안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다.
그래도 뭐가 문제인지는 알았다는 것이 다행이지만, 참으로 갈길이 먼 이 현실을 어떻게 타파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 요즘이다.
지난주에 정말 많이 부담되던 프리젠테이션이 끝났다.
경영전략에 대한 수업에서 대여섯명이 팀을 이뤄서 케이스 스터디를 분석하고 해당 케이스에서 다루는 기업이 취해야 할 전략이 어떤건지 도출해 내기 위해 몇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구성으로 발표를 하는건데, 각 팀당 70분의 발표 시간이 주어진다. 우리팀은 5명이었으니 인당 15분 정도의 시간동안 자기가 맡은 부분을 발표해야 하는거다.
나는 게다가 비즈니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이나 산업에 대해 분석하고 말하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 잘 끝내긴 했는데 아쉬운 점이 너무나 많다.
발표를 하는 중에도 계속 느낀점은, 이건 내가 말을 하는게 아니고 그냥 허공에 떠다니는 단어들을 잡아 뱉어낸 것일 뿐, 가장 중요한 이미지나 스토리를 잘 전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지향해야 할 제일 중요한 목적이 그게 아닌가.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유학생들이 한결같이 말했던 것처럼
언어때문에 힘든 요즘이다.
아, 그리고 또 한가지
친구들이랑 대화하는건 그래도 좀 편할줄 알았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되거나, 이해가 되고나면 용서가 안되는
끔찍한 농담을 밥먹듯이 던지는 애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걸 문화적 수준차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고지식하고 유머감각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게 편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 와중에 말이 잘 통하고, 대화가 즐거운 주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없는건 아니다.
그런 사람들과 있을 때는 더더욱 내 표현력 부족이 한탄스럽다.
이게 살다보면 나아지는건지, 피나는 노력을 해야하는건지, 어떤 노력을 피나게 해야 좋아지는건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고 일해야 하는 것도 많은 와중에 피나는 노력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 심정이다.
그리고 영어도 문제지만 독일어도 배워야 하잖아.
독일어는 3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나아진게 하나도 없다.
살면서 자주 접해서 익숙해진 단어가 몇개 생긴정도.
왜 본격적인 유학전에 언어에만 1-2년씩 투자하는지 알겠다.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