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독일에 온 날을 기준으로 날을 세어가게 될까?
오늘은 딱 세달째 되는 날이다.
미리 예매해둔 콘서트를 보러 만하임의 로제가텐으로 갔다.
3개월 기념으로 예매한건 아니었지만 바람도 쐬고, 기분도 전환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번이 독일에서 보는 두번째 콘서트다.
만하임은 독일에 와서 처음 2주를 머문 곳인데 그래서 그런지 반호프에 내릴 때마다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도 아마 정자역에 가면 그런 느낌이 들 것 같아.
프로그램은
Elgars "Serenade"
Beethovens "3. Klavierkonzert"
Mozarts "40. Sinfonie"
연주는 Mannheimer Phillharmoniker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Moritz Winkelmann
지난번에 우리동네 콘서트홀에서 본 콘서트와 비슷한 구성이다.
소품 하나, 협주곡 하나, 유명한(?) 교향곡 하나.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모짜르트의 교향곡을 라이브로 듣기는 또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우리동네에서는 앞쪽에 앉아서 봤는데, 이번에는 가격차이가 좀 쎄서 거의 끝줄에서 봤다.
그래도 홀이 엄청 큰 편은 아니어서 괜찮았다. 한달에 한번정도 마실나와 보기 괜찮은 수준이다.
엘가의 세레나데는 처음들어보는 곡이라 오케스트라의 실력에 감탄하면서, 또 어쩐지 김보성 닮은 지휘자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주의깊게 보면서 새로운 공간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귀와 몸을 익숙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다.
콘서트홀에 가서 들을 때마다 음악을 귀로만 듣는게 아니고 홀안의 공기(그날의 습도, 온도 등도 영향을 끼치는)를 타고 음파가 흔들흔들 날아와서 내 몸을 툭툭 치는 느낌을 받는다.
첫 곡은 보드랍고 우아해서 정말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시작할 때부터 깜짝 놀랐다. 대머리 피아니스트님이 엄청 강렬하고, 때로는 섬세하고, 굉장히 독창적인 템포로 곡을 막 이끌어 갔다. 손가락이 괜찮나 걱정될 정도로 빠르게 챠라라랑 하는 음이 끊임없이 계속 휘몰아쳤다. 1악장 끝날때랑 2악장 시작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로 집중력있게 끌고 갔다. 음악 들으면서 새로워서 계속 흥분되었다. 빨리 인터미션 되어서 면조랑 이 흥분을 나누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쯤(2악장 중반 이후)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졌다. 나 뿐만은 아니었던지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3악장 부터는 또다시 집중 집중. 무진장 재미나게 듣고서 인터미션이 되어 밖에 나와 맥주한잔씩 마셨다. 면조는 지난번 들은 라인란드 팔츠 주립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잘하는것 같다고 했다. 나는 누가 더 잘한다고 하진 못하겠고, 스타일이 진짜 달라서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수준높은 오케스트라를 지척에서 만날 수 있다니 유럽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사실 요즘 날씨도 별로 안좋고, 학교 과제는 많고, 시험은 다가오고,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고 있는 상황이라 상상속에서 자주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내가 좋아했던 곳들로 현실도피하고 있었다. 이 곳은 다른 내가 좋아했던 곳들에 비해 매력은 확실히 부족한 곳이라서 더더욱 쓸쓸함이 컸다. 그래도 이런 와중에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챙길 수 있어 위안이 된다.
마지막 대미는 모짜르트의 교향곡, 40번, 도입부는 누구나 아아주 많이 들어봤을 정말 유명한 곡이다. 그런데 2악장 부터는 들어본 적이 있나 없나 가물가물한 그런 곡이다. 교향곡에서는 앞서 들은 협주곡과 달리 오케스트라가 한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일사분란하게 한몸이 되어 움직였다. 김보성 닮은 지휘자도 정말 확신에 찬 표정과 몸짓으로 이끌어 나갔다. 모짜르트가 작곡한 곡을 들을 때면 뭐랄까 내 내면에 있는지 없는지 평소엔 알지 못했던 강인함을 발견하게 되는 기분이 든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괜찮아, 너가 쌓아온 강함이 니 속에 있어, 그러니까 쫄지마.'라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다독여 주는 것 같은 그런 위로를 받았다. 내가 많이 힘들긴 한가보다.
벌써 끝났어? 싶은 순간에 공연이 끝나고, 박수로 경의를 표하는 시간도 동네에서 봤을 때보다 짧게 끝났다. 더 추워진 거리를 걸어 다시 만하임 역으로 갔다. 기차를 기다리고, 기차를 타고 오면서 아이폰에 저장된 비디오들을 보며 잠깐 둘이서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 집에가서 이 불안하고 멍했던 3개월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콘서트 본 감상만도 이렇게 길게 써버렸네.
내 한계를 인정하고 이만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