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길은 험난했다.
오기 전까지 일주일간 우리 집 없이 각 부모님 집에서 번갈아 가며 잤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이지만 성인이 되어 함께 지내기는 쉽지 않다.
이미 완성된 어른으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을 갖게되어서일까?
부모님들과 지내면서,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막상 여기와서 6일째인 지금은 그 생각들이 결국 고민해봤자 큰 의미 없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우린 이미 결정했고, 다음 2년간의 인생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자주 연락을 드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도착하자마자 3일간은 아주 바빴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학교 등록을 3일안에 모두 마쳐야만 입학이 취소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끝까지 합격발표를 기다렸다가 출국하려고 마음먹었으면 결국 올 수 없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등록금을 송금하고, 보험에 가입하고, 가입신청서를 들고 학교 등록을 하느라 3일을 썼다.
독일의 합리적인 업무방식 중 대표적인 것이 상담시간이 정해져 있는거다.
고객 입장에서는 기다려야 해서 조금 애가 탈 수도 있다.
등록 마감일 3일전에 독일에 도착한 내가 그랬다.
하지만 정말 딱 맞게도, 단 하루의 여유도 없이 딱 맞게 일처리를 다 끝낼 수 있었다.
학교 직원들이 정말 친절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진짜진짜 고마웠다.
이번 독일행에는 정말 운명적인 무언가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비로소 대학원생이 되었다.
학교 마스코트는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입은 드래곤이다. ㅋㅋ
판타지 세계에서 학교 다니는 기분이 날 것 같다.
공항과 비행기안에서 너무나 불쌍했던 요를, 노릉은 현재 2주짜리 임시숙소인 에어비엔비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사료는 먹던 것을 잔뜩 싸온 덕분에 넉넉히 있고, 엊그제 아주 큰 애완동물 용품 샵에 가서 습식파우치도 여러개 사왔다.
요를은 유럽에 온 뒤로 눈꼽이 적게 끼고 있다. 공기가 좋아서 그런걸까?
요를은 적응력이 너무 좋아서 첫날부터 잘머고 잘자고 잘싸고 그랬다.
집이 넓으니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누워보고 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노릉도 날벼락같은 긴 이동을 끝내고, 한껏 소심해져 있다가 요를을 따라서 이제는 제법 용감하게 이곳 저곳 다닌다.
경험은 고양이도 성장시키나보다.
독일의 집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침실, 거실, 욕실, 주방이 전부 독립된 방으로 되어 있다.
같은 넓이라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집주인 크리스와 그의 반려견 웨슬리가 쓰던 침실을 우리가 빌려 쓰고 있다.
둘은 아무래도 옷방으로 쓰고 있었던 듯한 또다른 침실에 머물고 있다.
피아니스트고, 만하임의 오페라단과 함께 일한다고 한다. 훤칠하고 사람좋은 미국인이다.
가구나 소품을 고르는 센스가 정말 좋다. 현재 집이 이사를 위해 짐을 조금씩 빼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정말 필요한 가구만 딱 있고 아주 근사하다.
또 그는 웨슬리를 정말 사랑하고, 고양이도 예뻐한다.
이런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다 괜찮은 퀄리티의 사람이 되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데,
대부분 한결같이 자연과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
어제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학교가 있는 보름스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근방에 있는 큰 숍에 놀러간다거나 공원에 가서 빈둥대고 쉬었다.
사실 집을 구하느라 온갖 광고에 연락을 보내놓은 상태여서 어제만 두군데에서 전화를 받고 약속을 잡았다.
정말 많은 곳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변은 너무 적게 온다.
그나마도 고양이 있다는 말을 빼고 문의를 보내니까 전화가 왔던 것 같다.
난관이 예상되지만, 또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특히 불안하다. 1주일 뒤면 잘 곳이 당장 없기 때문이다.
제발 신이나 사람이나 아무나 좀 우릴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