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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디자인과 나

2010년 2월에 졸업을 했으니, 대략 6년정도가 지났다. 프로페셔널로서 충분한 경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학교에서 가르쳐 준 것을 기본 재료로, 그 때 그 때 센스와 임기응변이란 양념을 쳐서 그럭저럭 먹고 살아왔다. 문득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때가 생각났다.


내가 가르침을 받던 교수님들 중에는 현역으로 일하시는 디자이너도 있었고, 높은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 하시는 분도 계셨다. 후자의 경우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통해 작품전시를 하셔서, 교수님들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디자인을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특히 타이포그래피나 그래픽 엘리먼트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수업에서는 그리드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물론 계획과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디자인을 해야겠지만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일적인 면에서도 당시의 교수님과 학생들은 간결하면서 의미를 함축한, 아주 담백한 디자인을 선호했는데 꼭 그런 스타일만이 형이상학적이고 깊은 뜻을 포함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리고 나로써는 사실 게으름을 피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그런 스타일을 남용했다.


예술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자기 표현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반복노동이 많은 디자인 작업을 통해 20대 초반의 공허한 감성을 표현하기란 어려웠다. 지나온 인생을 통해 구축한 컨텐츠도 없었고, 배움을 통한 정보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를 표현해 내야만 했는데, 표현법을 배우면서 표현할 내용은 아무도 가르쳐 주거나 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은 대부분의 수업에서 그노무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온 정신을 쏟다가 포기해버리거나, 어찌어찌 내용을 만들고 나서 시간이 부족하거나 힘이 빠져서 그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짜 작업'은 대충 해버리기 일쑤였다.


4년 통틀어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타로 매뉴얼'이다. 도서관에서 타로카드에 대한 책 십수권을 빌려서 원고를 쓰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타로점을 볼 때 한손에 들고 순서를 따라갈 수 있는 핸드북을 만들었었다. 어줍잖은 말빨로 친구들 타로점을 봐주었는데 적절히 독설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면 다들 진지한 눈빛으로 들었다. 정성스럽게 제본을 한 핸드북이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잘 사용하였다. 쓸모있는 것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홈페이지 만드는 것을 좋아한 것은, 프로세스가 단순하고(내 입장에서는) 제작이 끝나고 출판하는 데 수초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어서 비교적 쉽게 접근했던 이유도 있다. 기능적이고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결국 그 것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함이다. 나 스스로도 책이나 잡지를 많이 사보는 것도 아닌데, 출판을 위한 에디토리얼 디자인이 아무리 재밌어도 그 분야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주변 사람들을 보면 결국은 이른바 '제본소 디자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기획에, 시간에 쫓기는 결과물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지쳐있었다.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기간은 사실 내가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보기좋게 편집을 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의뢰받은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조직의 일원으로 함께 일을 하는 방법, 다른 회사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 다양한 분야의 고객사의 상황과 정보를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편집해 내는 방법을 익히고 연습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알아듣는 언어와 규약을 익힌 셈이다. 디자인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는 딱히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관심이 끊어진건 아니지만, 그 기간의 나를 디자인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료제란 것은 기업체의 규모나 역사를 떠나서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는 담당자의 의견은 그 사람에게 월급을 주고, 우리 회사에 계약금을 주는 대표에게 쉽게 묵살당했다. 해당 프로젝트에 가장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아닌, 그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늘 주도권을 쥐었다. 디자인일을 하는 친구들끼리 모이면 우스개 소리로 하는 이야기는 '돈 주는 사람 말을 들으면 된다'였다. 우리들은 그렇게 되기 싫던, 디자이너가 아닌 회사원이 되었다.


부모님 또는 나의 기초 재산이 많아서 구지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지 않아도 하고싶은 작품을 만들어내서 전시를 하거나, 학위를 따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을 살게 되었다면 이런 기분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까? 나는 애초에 내면의 컨텐츠를 찾아 애써야 하는 작가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클라이언트가 없이도 디자인을 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결국 나는 모종의 실험이 해보고 싶어졌다. 디자인을 첫 전공으로 배운 사람이, 다른일을 하게 된다면 기획부터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 서류 하나를 만들어도 조금 더 아름답고 가독성이 좋은 서체를 사용했고, 슬라이드 문서의 화면전환과 타이밍도 꼼꼼히 체크하는 버릇을 가졌는데, 이런 디테일을 볼 줄 아는 능력이 다른 분야에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예를 들면 과일가게를 차린다고 가정하면, 과일의 배열부터 시작해서 품목 선정까지 다른 과일가게와는 어딘가 콕 찝을 수 없어도 차이점이 존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과감하게 디자이너로의 커리어를 더 쌓는 것을 관뒀다. 그렇다고 디자이너를 관둔 것은 아니길.  게으름의 수렁에 빠지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란다. 두번째로 전공한 경영학은 쉽게 교만해질 수 있는 요소가 많은 학문 같다. 이런 것도 조심해야겠다. 난 쥐뿔도 모르고 그냥 시험만 잘쳐서 졸업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