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복날이다. 어제 쉬는날인 아빠가 새벽에 시장에 가서 토종닭을 사서 백숙을 해주셨다. 국물에 불린 찹쌀을 넣고 닭죽도 쑤어 주셨다. 닭똥집 볶음도 아빠 방식으로 특이하게 해주셨는데 엄청 맛있더라. 엄마가 아픈 뒤로 요리 및 집안일은 아빠의 몫이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는 직장도 있으신데, 너무 힘들지는 않으신지 걱정이다. 남편은 아빠와 술한잔 하는 것을 좋아한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해서 매번 고민해서 술을 사간다. 이번에는 공부가주를 사갔다. 술이란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 더 맛있으니까 함께 마셔주는 사위가 있어서 아빠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출국일이 결정되고 연일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아픈 엄마를 놔두고, 아니 정확히는 아픈 엄마와 엄마를 돌보는 부담을 안게 된 아빠와 동생을 놔두고 먼 나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지만 아름답고 좋은 동네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하루하루 지내는 행복도 비로소 소중하게 느껴진다. 무슨 일 있거나 때로는 아무 이유없이 모여서 실컷 수다떨고 헤어지던 친구들과의 시간도 벌써부터 그립다. 대전에 내려가면 바쁜 일상중에 시간내어 모여 맛있는 것 해먹거나 사먹는 대전의 가족들도 쭉 건강해야 할텐데. 다른 모든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로 가서 개고생할 나와 남편을 더 걱정할 것 같지만 우리는 또 모든 다른 사람들을 걱정한다.
아빠는 먹을 것을 좋아하신다. 늘 맛있는 것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조금 체념한 것은 있지만, 그래도 기왕 먹을 거 더 맛있게 먹으려고 늘 연구하는 타입이시다. 예순이 넘으셨지만 식탐이 고민이라고 하신다. 아빠의 성격을(사실은 외모도) 빼닮은 나도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아빠가 도시락을 싸줘야 할 때가 있었는데, 며칠 내리 계란말이를 싸주셨었다. 그런데 계란말이 버젼이 그 때 그 때 달랐다. 하지만 엄마처럼 순수히 계란물만 푼 계란말이는 아니었다. 김을 넣거나, 김과 치즈를 넣거나, 파를 넣거나 한 계란말이였다. 나름대로 맛의 풍부함을 추구한 고민의 결과였다. 하지만 칼을 꺼내 잘 잘라서 넣어주시진 않았다. 대충 뒤집게로 꾹꾹 눌러 도시락통에 담아주셨다. 눅눅해진 김이 뒤집게로 잘릴 리가 없었다. 학교에서 도시락 뚜껑을 연 나와 함께 점심을 먹는 친구들은 무척 난감해 했다. 그 때는 내 반찬을 아무도 먹고싶어 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을 때였는데, 처참하게 담긴 김이 든 계란말이의 모습에 너무나 우울했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아빠가 바빠서 그랬거니 생각하고 먹었다. 비록 먹긴 힘들었지만 맛은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니 아빠가 잘 기억하고 계셔서 놀랐다. 쪼금 미안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아빠가 해줬던 음식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볶음라면이다. 끓는물에 라면을 삶아서 건져놓고, 잘게 썬 양파, 피망, 당근 같은 채소들과 함께 후라이팬에 볶아낸 것이다. 케찹과 라면스프로 간을 맞춰서 아주 고소하고 짭쪼름하면서 맛있다. 파마산 치즈를 뿌려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폴리탄 스파게티같은 느낌이구나.
명절이나 제사날에 큰집에서는 제사 음식을 몽땅 넣고 끓인 잡탕찌개를 늘 해서 먹었었다. 기본은 김치찌개에 전이나 산적같은 제사음식을 꾸미로 넣고 끓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줬더니 맛이 없을게 분명하다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부탁해서 아빠가 지난 설에 잡탕찌개를 해주셨었다. 남편은 한입 먹어보더니 냄비 반절을 혼자서 비웠다. 아빠의 버젼은 큰집 것 보다 조금 더 맛있었다. 부대찌개처럼 햄도 썰어 넣고, 청양고추로 액샌트도 주었다. 사실 그 때 그 때 있는 재료로 풍미를 더하는 것이 잡탕찌개의 핵심이긴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아빠의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같이 아빠가 만든 백숙을 먹었다. 엄마의 요리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는데 엄마는 확실히 매일매일의 가족요리보다는 손이 커야만 할 수 있는 잔치요리를 잘하셨다. 감자탕, 육개장, 아구찜 같은 식당에서나 먹을법한 요리를 나는 엄마가 해줘서 먹어왔다. 우리 엄마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좋은 재료로 만들었고, 엄마의 재능은 통이 큰 음식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맛집 음식 저리가라 할만큼 맛있었다고 생각한다.
요리를 잘하든지 못하든지 그 사람만의 특기는 분명히 있다.
엄마의 요리와 아빠의 요리를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남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좋은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