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많은 것을 버리고, 많은 사람과 작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작별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난해의 경험을 통해 가슴아프게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슬프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은 나를 좀 더 가볍게 할 것이다.
지난 해 가을쯤부터 머리를 짧게 잘라서 더이상 머리끈과 같은 악세서리가 필요없게 되었다.
또 라섹수술을 해서 안경도 더이상 필요없게 되었다.
이 둘은 30대로 완전히 넘어오면서 겪은 정말 큰 변화다.
나와 나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미래에 대해서 물어본다.
언제 출국할 것인지, 어느 지역으로 갈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먹고 살 것에) 대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이민을 통해 국적을 버릴 것인지, 아이는 가질 것인지, 한국에 돌아올 계획은 없는지.
사실은 이 중에 어떤 하나도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게 없다.
오늘의 내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이 내일의 내가 내린 결론과 같으리란 보장이 없다.
아마도 사람들은 큰 결심을 하고 멀리 이사를 가는만큼 거창한 계획이 있을 것이라 오해하는 듯 싶지만 나는 도무지 다음주의 내가 지금 하던 것을 때려칠지 말 지 조차 확신이 없는 상태다.
모험은 그냥 하는거다. 확실히 보장되는 미래가 있다면 모험이라 부르지도 않겠지.
한국에 계속 산다면 아무래도 수치화 가능한, 저런 질문에 대답가능한 어느 지표를 동반한 계획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연간 얼마 이상의 수익을 목표로 커리어를 관리한다든지, 2022년까지는 교외에 땅을 사서 집을 짓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든지 하는 계획 말이다.
이런걸 꿈이라고 부르면서 하루하루 맛있는 것을 사먹는다든지 친구들과 차한잔 하면서 즐거운 수다를 떤다든지 하는 소소한 행복으로 나날을 채워나갈 것이다.
이 것도 물론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많이 해봐서, 다른 방식의 즐거움도 느껴보고 싶다.
결국,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결심한 독일행이니만큼 내 미래는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난생 처음 살아보는 30대 초반이며, 난생 처음 살아보는 2016년에, 난생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난생 처음 시도해보는 생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히 달라질 삶을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을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해야 한다.
더이상 흥미없어진 책과 dvd, 음반을 정리할 것이다.
더이상 필요 없어진 식기, 주방용품도 정리할 것이다.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처분할 것이다.
구색으로 갖춰뒀지만 입지 않는 옷도 정리해야 할 것이다.
버리고, 또 버리지 않으면서 정말 나와 나의 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료해 졌으면 좋겠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상황과 생활과 감정 등등이 조금씩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그 것이 올 해의 내게 갖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