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는 그 어느 해보다 조용한 생일날을 보낸 기분이 드는데, 왜냐하면 일주일중에 가장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는 요일이 화, 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학교를 두 군데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인 스케쥴이고, 다음주에는 여행을 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부를 미리 해놔야 한다. 아무튼 막상 머리속에 집어넣고 있지는 않지만 수업을 찾아듣거나 학습자료를 프린트하는 등의 작업으로 상당히 바쁘다.
언젠가 지금의 시간을 보답받고 싶다... 끙. 정신적으로 힘들어.
생일 선물로 뭘 받고싶냐는 질문을 면조와 원근이로부터 들었는데, 딱히 가지고 싶은게 없었다.
아니 가지고 싶은 것은 그때그때 사거나 포기하거나 -_- 조취를 취해서 그런가. (택배가 꾸준히 도착중)
필요한 것은 대부분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청소기 배터리, 전기압력밥솥과 같이 너무 비싸거나 의미부여가 곤란한 것들 뿐이다. 마침 나도 잊고 있었던 필요한 향초를 친구가 선물로 줘서 너무 기뻤다.
동생에게는 읽어보고 싶은데 비싸서 망설이고 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부탁했다. 중고로라도 컬러판을 달라고 했다. ㅎㅎ 책은 선물로 받으면 어떻게든 읽게 되므로 일석이조의 방법 같다.
남편과는 그냥 집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스시야에서 점심코스를 먹었는데, 아 너무 맛있었다.
아주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진 않아도 실력있는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스시중에서는 여기가 제일 맛있는거 같다. 물건이 선물인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경험이 선물이 되는 경우도 참 좋다.
생일을 기념하는 방법은 단순할 수록 만족스러운 것 같다.
예를들어 올해는 점심으로 안가봤는데, 먹고싶던 가게에서 먹고싶던 스시를 먹어서 너무 만족했다.
여기에 이것 저것 생일이니까~ 라는 이유로 해야 할 것을 미룬다든지, 안해도 되는걸 한다든지 하면 지저분해지고 애초의 '기념'을 더럽히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보니 한국나이로 서른인데, 이제야 삼십대가 되었나? 싶을만큼 길고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던 이십대였다. 이젠 두번다시 돌아갈 수 없다니 조금 아쉽긴 한데, 그래도 앞으로 10년간 삼십대로서 힘내야 하므로 기대감이 훨씬 크다.
갓 스무살이 되던 해부터 일본, 캐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영국, 아일랜드, 태국, 대만, 미국 그리고 한국! 총 10개국을 방문했으니 뭐 거진 일년에 한번식은 여행을 한 셈이구나. 매우 뿌듯하고 감사한 인생을 살았구나 싶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행이구나. 그런데 아직 언어는 두가지밖에 제대로 의사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
대학교도 다니고, 무시무시한 졸업전시회도 했고, 운전면허도 땄고, 회사도 3년이나 다녔고, 결혼도 하고 참으로 많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적어도 20대가 되기 이전보다는 대부분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고 실행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게 많다.
30대에는 아마 그동안 저지른 것에 책임도 좀 지고, 그러면서 더 스케일 크고 재미난 일들을 벌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여행을 많이~ 틈만나면 다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체력이 제일 중요해.
어제 잠시 화진이형과 통화하는데 나보고 생일날까지 수영을 배운다며, 그렇게 건강해서 뭐하려고? 라고 묻길래 몹시 당황했는데, 좀 천천히 지쳐서 최대한 멀리 돌아다닐 수 있게되기 위해서 건강해지고 싶은 것 같다. 30대의 시작을 수영강습과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고 즐거운 일이다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