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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뉴욕에서의 마지막 이틀

잊어버리기 전에 써놔야지.


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이 날은 하민이의 학교 오케스트라가 있는 날.

저녁 7시까지 가면 되니, 그 전까지 일과를 마쳐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민이가 추천한 breakfast를 파는 kitchennet에 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숙소 근처는 약간 위험한 동네긴 하지만 근방에 콜롬비아 대학교와 MSN(하민이 학교)이 있어서 먹을거리가 괜찮은 곳이다. 이 곳에서 지내면서 살면서 본 흑형들을 다 더한 수보다 더 많은 흑형들을 봤다. 스페인어를 쓰는 흑형들도 있는걸로 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만 있는 곳은 아닌거 같다.

아무튼 팁으로 생활하는 이 곳의 웨이터들은 어찌나들 친절한지, 특히나 내가 찾아가는 곳들이 현지인이나 학생들에게 두루 유명한 곳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친절한 가게에는 항상 손님이 많은 법이지.

원래 아침도 잘 안먹는 사람이 어쩐지 욕심이 나서 protain breakfast라는 엄청 큰 메뉴를 시켰다. turkey sausage 두개, maple syrup glazed bacon 여러개, 시금치를 넣은 에그 스크램블이 듬뿍 나왔다. Cafe au rait도 시켰다. 구수한 카페오래가 한사발 가득 나왔다.

열심히 노력해서 반정도 먹고 카페오레를 위해 남겼다. 카페오레는 정말 맛있었는데, 따끈하고, 은은한 단맛이 정말 좋았다. 3분의 1정도 남았을 때 설탕을 하나 까서 넣었는데, 더 맛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으니 용기가 생겨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어제 가려다 동선상 포기한 AIGA 내셔널 그래픽 디자인 센터에도 들렀다. Dan Friedman 전시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안봤으면 후회했을 법한 아주 멋진 전시였다. 작품들이 아주 생기발랄하고, 또 제법 스케일이 커서 재미가 있었다. 삶이나 어록이 간간히 프린트되어 벽면에 써있는데, 이런거 너무 좋다. 감동적이다.

전시를 보고 나왔더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항상 전시를 보고나면 시간이 훌쩍 가 있다. 한정된 시간을 한 곳에서만 보내는 것이 여행각으로서 여간 아쉬운일이 아니긴 하지만, 뭐 어때. 혼자하는 여행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코너에 있는 트럭에 사람들이 길게 줄서있다. 아침을 너무 많이 먹어 배는 고프지 않지만 일단 나도 따라 섰다. 샌드위치가 맛있어 보였지만 점심으로 먹으려고 생각한 엄청난 샌드위치를 위해 초콜렛 푸딩과 시나몬 도넛을 시켰다. 그 트럭의 이름이 시나몬 스네일이었다. 근처 공원에 앉아서 먹었는데, 공원도 멋지고 푸딩 맛도 멋졌다. 도너은 특히 맛있었다. 계피가루가 내가 아는 그런 공장제가 아니라 신선한 시나몬 스틱을 벅벅 갈아 만든 듯한 그런 맛이었다. 하지만 이도 반씩 먹고 버렸다. -_-; 벌받을거 같아 무섭다.

지하철타고 라파옛트와 1st길이 만나는 곳에 있는 Russ & daughters라는 꽤 핫해보이는 해산물, 샌드위치 전문점에 갔다. 팔로중인 인스타그래머나 잡지 같은데서 몇번 본 곳이다. Super heebster 샌드위치란게 유명하대서 한번 시켜봤다. 내가 고른 베이글 안에 크림치즈 듬뿍, 연어와 흰살생선을 다져만든 샐러드 드듬뿍, 그리고 와사비에 절인 날치알을 얹어주는 신기한 샌드위치였다. 가게에서 파는 다른 해산물들 완전 먹어보고 싶었다. 잘먹는 면조와 꼭 다시 와야지!

근처 공원에서 따뜻할 때 한입 먹고, '우와 맛있어!!!' 외친다음에 잘 싸서 가방안에 넣었다. 어떤 러시아 예쁜 언니들 사진찍어주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메트로폴리탄 가기 전에 바로 옆 센트럴 파크에서 사과주스 사서 싼 베이글 샌드위치를 와구와구 촵촵. 운동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건강해보인다. 이런 크고 훌륭한 공원이 도심 한복판(일명 노른자땅)에 이렇게 멋지게 관리되고 이용되어지다니. 부럽고 멋있다. 쌀쌀한데 햇살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나 여전히 반쪽이 남았다. 내용물이 진짜 많아서 엄청 컸다. 이건 버릴까 하다가 맛이 아까워서 나중을 위해 다시 싸놨다.

메트로폴리탄에 들어가려고 보니 오늘은 5:30까지밖에 안하므로(한시간 조금 더 남아있었다), 원하는 만큼 돈을 내고 들어가라고 했다. 그래서 오 땡큐, 5달러만 내고 들어갔다. (원래 12달러)

유물들은 빠른걸음으로 후딱후딱 보고 지나가고, 한국관에서는 약간 시간을 들였지만, 한국관 유물들은 그냥 그랬다.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컬렉션과는 차원이 달랐다. 악랄한 영국넘들 ㅋㅋ 대신 중국관은 엄청 크고 멋지고, 정원까지 꾸며놔서 좋았다.

내 목적은 회화!! 그림!! 메츠 뮤지엄은 장난아닌 시대의 유물들이 떡떡 벽에 걸려있는 이상한 곳이다. 아 진짜 멋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피카소, 뒤샹, 앙리 드 뚤루즈 로드렡, 진짜 충격적이었던건 쇼핑백 같은데서 자주 볼 수 있는 조르쥬 세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가 버젓이 걸려있는거다. 떡하니. 아무렇지 않게. 진품으로. 맘만 먹으면 들고 갈 수도 있을 만큼 대놓고.

아무튼 진귀한 곳이었다.

시간이 없어 하나하나 꼼꼼히 보진 못했는데 너무 많아서 시간이 있어도 불가능 할 것 같았다.

MoMA는 이에비해 건물 자체가 작다보니 볼 게 없는 편에 속했다.

퇴관시간, 나와서 길거리에 앉아 잠깐 쉬었다. 어떤 흑형이 두툼한 천에 맨하탄 풍경을 단순하게 그려 팔고 있었다. 하민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선물로 주려고 하나 샀다. 원래 35달런데 곧 들어갈거라 30달러에 달라고 했다. 돈개념이 사라진 나는 '왜이렇게 싸지?' 생각하며 샀다. 물론 하민이는 엄청 기뻐했다. 정말 싼 거였다.

센트럴파크를 가로질러가서 지하철을 타려고 마음먹었다. 생각보다 오래걸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커다란 호수를 빙 둘러 걸었다. 호수 건너편의 마천루숲이 희한하게 정겨워 보였다. 벌써 4일째 뉴욕에 있다.

지하철타고 숙소로 가서 오케스트라 관란용으로 옷을 갈아입고, (그래봤자 걍 여행용 원피스) 부랴부랴 MSN으로 걸었다. 가을이라 브람스 3번과 시벨리우스 7번을 했는데, 브람스 3번을 하민이가 연주했다. 저학년 위주의 오케스트라라서 실력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풋풋하고 재밌었다. 이런 활기찬 브람스 3번이라니, 언제 다시 들어보겠는가? ㅋㅋㅋ

하민이와 인터미션때 만났다. 시벨리우스는 스킵하고 저녁먹으러 하민이가 추천하는 dino's 펍으로 가기로 했다. 난 맥주 두잔! 그리고 히만이 추천에 따라 bristle, 그리고 에피타이저 플래터를 먹었다. 음식들이 꽤 정성스럽게 나와서 놀랐다. 특히 소고기를 오랜시간 걸려 익힌 bristle은 정말 맛있었다. 맥주도 간만에 본토에서 미국산 IPA를.. (그런데 IPA의 본토는 인도인가? 급 궁금하다. 항상 미국것만 먹었어서)

쇼핑을 안하려고 마음을 머으니 돈이 좀 남아서 저녁도 내가 샀다. 하민이는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다. 대학다닐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짜식. 너도 돈 벌면 베풀고 살거라.

대신 내일 아침은 하민이가 쏘기로 했다. 뉴욕 떠나기 전에 꼭 가보고 싶던 Absolute bagle에서 아침 일찍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