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밴쿠버 공항에서

9년전 밴쿠버 공항에서 토론토로 환승하는 비행기를 놓쳤었다.

캐나다-캐나다 비행기로 갈아타는 것은 국내선임을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길을 잃거나 헤맨것도 아니었다. 환승시간이 짧아서 놓쳤다.

그 때 생각에, 이번에는 엄청 서둘렀다.

비교적 촉박한 2시간 30분이 주어졌다.

입국심사, 짐찾기, 환승항공편으로 짐 부치기, 깐깐한 캐나다의 세관심사대를 거쳐 탑승 30분전에 도착!

공항은 어찌나 크고 빙빙 돌아가게 만들었는지,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꽉 막힌 튜브같은 복도 안이다. =_=

짐이 무거운데 다행히 벨트에서 친절한 분이 끌어내리는 것을 도와주셨다.

완전 타인의 이런 호의를 받을 때마다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입국 심사 때 나한테 뭐 묻는 분들에게 일일이 친절히 답해 드렸다.


어제 인천공항에서 출국할 때, 기분이 오묘했다.

이전에는 공항 근처만 와도 신나고 들떠서 어쩔 줄 몰랐었는데, 이번출국은 어쩐지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아마도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남편과 새끼들(요를, 노릉)을 두고 나혼자 떠나오는 발걸음이라 그랬을 수도 있고, 요즘 대한민국에 흔하게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나를 거쳐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솔직히 컸다.

게다가 승무원 할머니(?)들은 백발이 성성하셔서 오히려 내 도움이 필요해 보이고... 비행 내내 긴장했다.

캐나다에 도착해서, 보더를 통과해 완전히 캐나다 땅에 있는 지금은 어쩐지 안심이 된다. =_=;;

나같이 슈퍼 덤덤한 사람도 이렇게 안전에 떨며 살아야 하는 나라인가! 우리나라!

아무튼,

집을 나서는데 노릉이 현관앞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는데 진짜 발이 안떨어졌다.

저 깜찍한 것들을 두고 한달이나 집을 비우다니!

19살의 나와는 달리 29의 나에겐, 예전에 없던 '지킬 것', '그리워 할 것'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근 십년만에 찾는 캐나다 땅이다. 십년전의 첫인상과 마찬가지로, 내 나라도 아닌다 마음이 참 편하다.

인천공항에서부터 날 괴롭힌 감기기운도 가셨다.


몇년간 항상 옆에 붙어있던 면조가 없으니 이상하다.

혼자서도 잘 사는 나였는데, 면조한테 이것 저것 의지하다보니 그 능력이 좀 옅어졌다.

복귀해서 돌아가마!

인디비쥬얼 최민희!


비행기에서 자리를 나도 모르게 창가로 예약했었는데, 사실은 아일쪽에 앉고 싶었다.

그런데 옆자리 아저씨가 뒤의 아주머니(아일)와 자리를 바꾸지 않겠냐고 제의하셔서 매우 흔쾌히 승락했다. ㅎㅎㅎ

옆자리엔 중국사람이 앉았는데, 입냄새는 지독했지만 좋은사람이었다. 별로 대화는 안했지만.

잠이 안와서 엄청 뒤척였는데도 불평하나 없이 쿨쿨 잘 자던 너그러운 분. 씨예씨예!

그러고보니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자리는 무조건 창가였는데, 이젠 화장실 가기 편하고 짐 넣고 찾기 편한 아일쪽이 훨씬 좋다.

기내식도 예전엔 무조건 (좀 더 많은)고기 위주였는데, 이젠 소화 잘되는 것 위주. ㅠㅠ

기내식은 나름 맛있었는데 너무 짰다. 근데 여기에 소금이랑 후추 더 팍팍 쳐서 먹는 외국인들 보면 참 신기해.

공짜로 나눠주는 간식(컵라면)도 소화 안될까봐 마다했다.

커피도 안마시고, 따뜻한 물과 녹차를 달라고 해서 마셨다.

잠도 잘 못잤다. 밥먹는 시간 아니면 항상 떡실신 상태였는데, 언젠가부터 사람많은데서 깊게 못자게 되었다.

적고보니 그냥 방광과 위장건강 등등 건강이 나빠진 것 뿐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남아 일기라도 써볼까 하다가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 시키고 앉았다.

3800원주고 마시던 톨블랙커피가 단돈 2달러! 너무 뜨거워서 비치되어있는 우유를 섞었다.

나의 생활패턴으로 보면 이나라는 참 자비로운 나라다. 커피와 햄버거가 싸고 맛있음.


탈 때 인천, 밴쿠버 둘 다 비가내리고 있다고 알려줬었는데 다행히 이륙 착륙 모두 비가 개인 상태에서 안전하게 했다. 기장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방송하는데 2개국어 하는거 왠지 멋지다.

날씨가 좋다.


가지고온 책의 5분의 4정도를 읽었다. 4시간 반정도 비행이 남아있어서 남은 부분은 아껴뒀다.

야금야금 아껴서 읽어야지. 책 한권 더 가져올까 말까 하다가 안가져왔는데, 좀 아쉽다.

왜 항상 더 가져올까 말까 하다가 가져오면 안읽고, 안가져오면 아쉬운걸까.

계륵같은 책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전자책은 눈이 피곤해서 못읽겠다.

영화리스트에 레고무비가 있길래 틀었는데 중간에 전투씬에서 잠들었다.

난 어떤 영화든 본격 액션신이 나오면 졸리다.

곧 탑승을 해야한다.

산 커피를 또 버리고 타야겠네.


토론토 가면 한밤중이겠지.

하루를 비행하며 보내고 있다. 나는 비행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