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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뉴욕 건너오는 버스안에서 쓴 일기

마왕의 부고소식을 듣기 전이었다.

아.

화창한 뉴욕거리를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질질 짜면서 숙소까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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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2014. 10. 27

버스안이다. 사람이 제법 차있다. 새벽 5:20분쯤 아침먹으라고 맥도날드에 내려줬다. 콤보와 물 한병을 샀다. 캐나다 또는 영국에서 콤보와 셋의 차이를 학습했던 것이 생각난다. 콤보가격이 비싸다. 미국 물가가 살인적이긴 하나보구나. 국경이 있는 버팔로에 이어 두번째 내리는 건데, 생각보다 버스여행이 힘들지는 않다. 낮에 하루종일 움직이고 일어나 있어서 제법 피곤했기에 잠을 잘 잔 탓도 있다. 금요일에 토론토로 돌아올 때도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

혼자서 하는 여행에 점점 익숙해져간다. 예전엔 혼자인게 당연했는데, 이젠 그렇지가 않다보니 적응하는데에 일주일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어제 이모가족과 교회에 갔다온 후 완전히 깨달았다. 아마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 관성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을거야.
온전한 일주일을 토론토에서 보내고 나니 내가 ‘돌아왔다’는게 실감이 났다. 떠난지 벌써 7-8년의 시간이 흐른 곳임에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조금 슬펐던 것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변했더라. 이제는 한국이나 제3국으로 가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재의 구성원들도 언제까지 이 곳에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도 있었다.
좋은 분들이셔서 이것 저것 관심있게 물어봐주시고, 말을 걸 때마다 상냥하게 대답해 주셨다. 지현언니와, 그리고 약간 얼굴을 아는 갈집사님을 다시 봬서 좋았다. 그냥 정처없이 반가웠다. 처음뵙는 분이 더 많았다. 한국에서 미술을 하셨던 분, 한국에서 분당에 사셨던 분, 등 작은 공통점이 말문을 트기 쉽게 만들어줬다.
이 곳에는 어렵게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무래도 교민사회의 특성상 자랑은 삼가고 모두가 공감하는 어려움에 대한 주제가 늘 화제에 오르는 이유도 있겠고, 또 이 곳에서 그토록 간절히 교회에서의 신앙, 사회생활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정상 그럴 수도 있겠다.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이민자’로 살게 될 내 앞날에 대해 그리게 된다.

중간에 여담, 혼자 있는 것은 참 좋다. 이렇게 글로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이 있으니까. 대화는, 즐겁지만 휘발성이다. 그리고 때론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하는지, 상대가 듣고싶은 말을 하는지, 그 둘이 얼마나 다른지 잊곤한다.

나는 현재 대외적으로는 ‘이민’보다는 ‘유학’을 준비하는 유학 준비생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렇다. 일단 현재의 나는 공부가 더 하고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부가 한국에서가 되었건, 캐나다 또는 미국이나 유럽이 되었건 사실 큰 상관은 없다. 다만 단순한 공부가 아닌, 외국어로, 전혀 새로운 타지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발견을 하며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이 9년전 캐나다에 올 때부터 있었다.
나의 욕망의 불씨란 것은 한번 켜지면, 활활 타오르진 않아도 좀처럼 꺼지지는 않는 것 같다.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하고 만다. 중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남미여행이 그랬고, 2005년부터 생각했던 ‘2012년의 아일랜드 여행(구체적인 연도에 대한 이유는 생각이 안남)’이 그랬다. 장학금도 받아야겠다 생각하면 받았다. 취업도 그랬다. 캐나다를 떠날 때 비행기안에서 언젠가 (빠른 시일 내애) 다시 와서 못다녀본 뉴욕. 동부 여행도 다니고, 그 땐 돈벌이나 생활의 고민없이 순수히 캐나다를 즐기다 가야겠다 생각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러고 있다.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쉽게 이루는 것도 있고,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게 이루는 일도 있다. 공부는 몰라도 입학은 생각보다 쉬웠으면 좋겠는데, 모르겠다. ㅋㅋ 하늘에 맡겨야지.

유학은 이민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단어다. 마치 연애와 결혼이란 단어간의 차이점과 무게가 비슷하다고 난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결혼을 할 지도 모르는 국가의 학교에 가서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헤어질 필요가 있다. 이거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꼭 기억해야지.
왜냐하면, 내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지켜본 ‘이민’을 갔던 사람들 중에 내 기준으로 불행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헤어질 수 있는 자유가 없어보였다. 하루 하루 이건 아니다 싶었을텐데도 입에 풀칠하기위해 버텼다. 외모와 건강은 점점 망가져가고, 약간 늘은 영어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인간적인 발전이 크게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찾는 소소한 행복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자식 크는 것 보는 재미’, ‘내 자식은 나와 달리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는 안심’ 같은 것이 있다. 수지타산이 안맞는다, 짐 싸서 한국가자고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던 지인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또다른 옵션을 고려할 여유는 잃지 않았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삶은 확실히 생각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게임이고, 언제 어디서 장애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며. 스테이지를 거듭할 수록 강해지는 캐릭터와 달리 나는 점점 체력도 약해지고, 쓸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은 늘 한정적이다. 답없는 현실에 갇혀 살기보다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이 소수라도 남아있을 때를 놓치지 않는 영민함이 필요할 것 같다.

아, 그나저나,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
노트북이 너무 무겁다. 베터리를 좀 쓰면 이온 몇개만큼의 무게라도 덜어질까 하는 멍청이같은 기대로 이 일기를 쓰고 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