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존해서 거슬러 올라가보자.
6월
한달 내내 바빴다. 주 원인은 IELTS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짜로 시험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운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운전을 잘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과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은 다르다.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그래서 마음이 더 바빴다.
4월에 시작한 무영과가 진행중이므로 화, 수, 목은 퇴근 후 영어공부를 했다.
몸은 힘들어도 영어는 재미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게 언어고, 그 언어로 여러가지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정말 뿌듯하다. 하지만 힘들다. 잘 늘지 않는다. 재미있고 힘든 한달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엄마 아빠 원근이와 청평의 펜션에 놀러갔다 왔다. 가족끼리 가는 어마어마하게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을 통해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면조에게 많이 고마웠다.
6월 말에는 시험삼아 IELTS 테스트를 진짜로 봤다. 잘 못봤다.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 그리고 편입을 지원했고,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다.
도전과 결실이 있는 뿌듯한 한달이었다.
5월
지난달 시작한 무영과를 재미있게 다녔다. 매주 배우는 것이 있어서 즐거웠다.
일하고, 퇴근해서는 틈틈히 해야 할 공부와 가고싶은 학교를 찾았다. 갈 수 있을 법한 나라에 대한 리서치도 했다. 책을 읽거나 위키피디아를 많이 봤다. 나는 정말 아주아주 깊고 좁은 우물 속 개구리 같았다.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면조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돈계산도 해보고, 이래저래 계획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 했다. 하지만 아직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조금씩 이루어 나가야 하는 단기 목표들을 세워봤다.
전주국제영화제에 가서 재미있는 영화를 몇편 봤다. 간만에 맛있는 것도 먹고 잘 쉬었다.
회사에 앞으로의 내 계획을 밝혔다. 밝힐 필요 없다는 것을 지인들이 알려주었지만, 그래도 체질상 거짓말이나 연기를 해야 할 상황은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회사는 나름대로 장기적으로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테니까 거기에 대해서 그럴 수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믿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후회는 없고, 난 아마 앞으로도 죽 이런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도로주행 시험을 두번 떨어졌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시험 시간도 불리했다. 때를 놓친 공부의 어려움을 조금은 깨달았다.
스케일링을 받고 사랑니를 뽑았다.
면조 회사 사람들과 두산 대 NC 전을 봤다. 남편의 회사 사람들과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두산이 이겼고, 재밌는 경기였다. 끝나고 술한잔 할 때도 참 재밌었다.
4월
길게 달려온 시나리오 스터디를 끝냈다. 시나리오는 완성하지 못했다. 중간에 주제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다. 좀 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확실히 해야겠다.
무영과를 시작했다. 프랭크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하에 12주간 매주 수요일 영어공부를 하게 되었다.
SYL과 계약했다. 우리로서는 거금을 주고 계약을 한 셈이다. 하지만 재무설계사와 상담 후 마음 편히 결정했다. 일 잘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좋은 거라고 하셨다. 동의한다. 일을 잘 해주셔야 할텐데.
월초에는 DAAD와도 상담받았다. SYL과 계약 전,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알아보려고 나름 노력을 했다.
덕분에 우리의 정보수집력(?)이 생각보다 괜찮은 수준임을 알게 되었다. 뿌듯했다.
3월
3월엔 내생일이 있다. 면조와 맛있는 양갈비를 사먹었다. 생일날 양갈비라니 호화로운 어른이 된 기분이다.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밀리고, 탈락하고 결국 6월에나 면허를 딴다. 3개월이나 걸리다니 너무 만만히 봤나 싶다.
어느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한달이었다. 캐나다로 가고자 했던 생각을 접고, 대학원을 다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부의 방향도 잡았다. 지난 몇개월간의 끈질긴 질풍노도 속 자아탐색의 결론을 슬슬 내리는 시점이었다. 이민박람회 같은 곳도 다녀왔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DAAD 세미나를 통해 어느정도 한계점은 알 수 있었다.
1, 2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에 대해 고민한 때였다.
특히 진로에 대한 위가 쓰릴 정도의 고민은 작년부터 지속되어온 전주에 이은 절정부였다.
회사엔 여러 사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힘든 프로젝트 때문에 새벽같이 클라이언트를 만나기도 했다.
갑자기 가중된 책임감이 무거웠다.
내 자신의 삶에도 자신이 없는 때였다.
쉬고 싶은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때였다.
결론
올 초에는 정말 깊은 고민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 고민의 끝이 과연 있을까 싶기까지 했다. 다행히 '일단 이쪽으로 가보자' 하는 방향은 잡았다. 그리고 방향을 잡자마자 불과 2-3개월 만에 엄청나게 많은 결정을 내리고, 시행에 옮겼다.
항상 너무 느긋해서 주변 사람들을 답답하게 했던 내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반년간이었다. 내 스스로도 신기하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한 어른으로서, 수년전의 나에 비해 눈부실만한 활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이 이렇게 자유롭고 대범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사회가 내게 기대하는 역할이 달라지고, 아이가 생기고, 삶이 더 복잡해지면 지금처럼 오로지 나와 남편을 위한 결정은 내리기 힘들어질 지도 모른다.
나름의 절박함이 나를 변화시킨 것 같다.
영어 수업엔 개근했고, 스스로와 한 약속을 거의 어긴 적 없었다.
누구보다, 어느 때보다 착실한 상반기였다. 하반기 계획도 어느정도 윤곽이 잡혀 있다.
좀 쉬어야 할 타이밍이 오고 있다. 물론 그 것도 계획의 일부로 정해져 있다.
힘들다. 진짜 몸이 힘들다. 그래도 아직 버텨야 한다.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여름에는 몸관리를 해야겠다. 적어도 먹을 거라도 좀 잘 챙겨먹어야 겠다. 운동도 조금이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