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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태어난 이래 최고의 주말이 아니었을까

금요일 저녁


남편은 고향친구들을 만나러 대전에 갔다.

정말 오랜만에 나 혼자 보내는 금요일 밤이었다.

혼자 밥먹을 나를 배려해서 현미밥도 지어놓고, 그저께 끓인 김치찌개도 냉장고에 남겨뒀다.

채소 몇 개 장을 보고, 내일 어쩐지 도시락을 싸고 싶어서 베이컨도 하나 샀다.

육류를 쇼핑하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집에오니 몽이가 여기저기 쉬테러를 해놔서 잠시 멘붕했지만 

다 치우고, 환기를 싹 시키고, 냄새가 빠지니 제정신을 차렸다.

김치찌개를 데우고, 채소 샐러드를 만들어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혼자였지만 요를, 몽이 두녀석이 신경을 안쓸 수 없게 놀고 있으니 혼자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빨래를 돌리고, 설겆이를 마치고, 내일 도시락 쌀 밑재료들을 손질해 놓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베이킹 소다 뿌려 몽이 오줌흔적이 남아있을 마루를 빡빡 닦아냈다.

바닥이 보송보송해지니 요를은 신이나서 매우 뛰어다녔다.

빨래가 다되어 널고서 좀 쉬려고 앉으니 밤 10시 반.

폭풍 집안일을 하는 불금을 보내고 나면 어찌나 뿌듯하면서 한켠으로는 아쉬운지. ㅎㅎ

일 좀 하고, 동생이 부탁한 교정도 좀 보고 하다보니 한시가 지나 잠들었다.


토요일 오전


주말 오전임에도 일찍 일어났다.

10시경에 서울역에 도착할 남편을 마중나가고 싶었는데 도시락도 싸야하니 마음이 급했다.

어제밤에 불려둔 병아리콩을 서둘러 삶았다.

준비해둔 채소와 어제 산 베이컨을 삶고 구워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양이 좀 적은 것 같아서 샐러드도 만들었다.

서둘러서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지만 잘못탔다. 하하하하.

버스는 종로를 돌아 남대문으로 명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마중은 실패하고 지하철역에서 만나서 함께 대학로로 향했다.

미리 신청해둔 건축강의를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전 11시 강의는 너무 힘들지도 않은 이른 시각이라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강의도 무척 재미있었다.

강의를 다 듣고 우리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낮술을 마셨다.

따사로운 햇빛을 쬐며, 패티오에 앉아 바람쐬면서 마시는 맥주는 지상 최고의 넥타였다.

낮술을 많이 마시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ㅎㅎ 여유로움의 상징같잖아.

강의 끝나고 아르코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중국작가들의 전시를 봤는데

기대치않게 너무 멋있어서 깜짝놀랐다.

다보고 한껏 배고픈 상태에서 매우 적은! 나의 도시락을 먹고나니 여전히 배가 고파서

맥주와 함께 구운 야채를 주문했는데, 사이드메뉴라 정말 조금 나왔다.

그런데 너무 맛있었다.... 허브솔트를 사야겠어.

느긋하고, 따사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홍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둘이 실컷 졸았다.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간 홍대엔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섰다.

조금씩 낯설어지는 홍대를 볼 때마다 서글프다.

기찻길도 없고 리치몬드 과자점도 없고, 언제부터 홍대의 랜드마크가 상상마당이었던거지.

여섯시엔 미리 예매해둔 크라잉넛쇼를 볼 예정이었다.

몇달 전부터 명함지갑을 사고 싶었는데 남편이 홍대 놀이터 앞에 있는 가죽장인의 집에 가자고 해서 갔다.

가죽장인의 집을 몇걸음 앞두고 놀이터의 프리마켓을 구경하다가 마감이 깔끔하고 디자인도 아주 단순한

너무 마음에 드는 가죽지갑을 발견했다!

가격도 브랜드 있는 것에 비해 너무 저렴해서 정말 기분좋게 구입했다.

기분이 좋으니 배가 또 고파져서 홍대에 갈 때마다 먹게되는 것 같은 일공육 라면을 먹고,

너무 배불러서 홍대를 마구 배회했다.

너무 걷다보니 발이 아파서 좀 쉬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하고많은 카페중에 너무 맛없는 곳을 골라갔다. 흑흑.

그래도 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안쉬었으면 공연을 볼 수 없었을거야.

명불허전 크라잉넛쇼는 게스트가 정말 훌륭했다.

처음보는 아시안체어샷은 프로레슬링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재미난 팀이었고,

오랜만에 보는 장기하와 얼굴들은 정말 클래스가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감탄이 계속 나왔다.

검엑스를 연상시키는 옐몬도 여전히 멋졌고,

크라잉넛은. 말이 필요없다.

그런데 프리즘홀의 사운드는 엉망이었다.

볼륨도 너무 크고 에코도 너무 심하고 저음과 고음이 콘트라스트가 너무 쎄서 그 좋던 노래들이 너무 매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팬심으로 재미나게 놀았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남편과 즐겁게 귀가했다.

또 몽이의 쉬테러에 다같이 멘붕하고 치우고, 환기하고.

씻고 떡실신.


일요일 오전


쓰기 귀찮다.

아점 열심히 만들어 먹고,

네이버 도서관에 갔다.

정자동에 있는 네이버의 그린라이브러리는 정말 장서들이 훌륭하다.

디자인 전공 서적밖에 둘러보지 못하긴 했지만 정말 많고 다양하다.

건대에도 꽤 많았는데 건대의 한 서너배정도?

아무튼 오랜만에 세시간가량 집중해서 책을 봤더니 스케치도 많이 나오고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일요일 오후


도서관 폐장시간이라 면조가 나왔다.

외식을 하고 싶은 흑심을 품고 나왔다.

그래서 정자동에 새로 생긴 회전스시뷔페를 갔다.

꽤 퀄리티가 좋았다.

하지만 먹고싶은걸 기다리려면 엄청 오래 걸렸다.

결국 두시간동안 스시를 먹었다.

난 기다리느라 두시간 내내 먹은 건 아니었는데

면조는 스시먹고 튀김먹고 디저트먹고 국수먹고 스시먹고 튀김먹고 디저트먹고 스시먹고 ... 멋있었다.

가장 맛있었던 것은 베이컨스시와 오렌지였다.

오랜만에 맛있는걸 먹었더니 기분이 너무 좋고 너무 배불러서 무도를 보며 소화시켰다.

아 무도는 왜이렇게 웃긴거지.

웃다가 너무 힘들어서 예매해둔 영화를 취소했다. ...

몽이 목욕을 시키고 양치질을 시켰다.

그 심하던 냄새가 안난다! 만세!!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요를은 여전히 귀엽다.

요를 똥냄새는 꽤 지독한데 몸에선 신기하게 냄새가 하나도 안난다.


아 벌써 두시다. 망했다.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