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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인내의 한달.

지난주 토요일, 몽이가 우리집에 왔다.

몽이는 미선언니가 키우는 강아지다.

시츄고, 12살에, 수컷이다.

미선언니는 여동생 내외와 예쁜 조카가 사는 두바이에 방문하는 한달동안 몽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갔다.


요를과 함께 산 후 나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마구마구 생기고 있던 참이었고,

비교적 교외에서 느긋하게 살아가는 우리 부부가 몽이를 맡아줄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초이스였을거다.

나도 하룻밤 이상 집을 비울 때 항상 요를떔에 걱정이 많고,

휴가를 간다든지 더 오래 비울 경우에 대해서도 항상 걱정을 하는편인지라 사정이 이해가 갔다.

애지중지 돌보던 강아지를 남의 집에 맡긴다는 것이 불안하고 민망하기도 했을텐데

게다가 서울도 아니고 분당까지 데리고 왔다 데려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을텐데

오죽하면 언니가 나에게 부탁할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나는 내가 책임지고 강아지를 돌본 적이 없고, 강아지와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은 

대전의 시댁에 방문했을 때가 전부인지라 걱정도 됐지만 무지의 용감함으로 그러자고 했다.

대전에서 개를 키워본 남편은 조금 고민을 했지만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를 떠올려 역시 승낙했다.

언니가 걱정이 되었는지 몇차례 강아지의 수발(?)이 어려운 점을 설명했는데,

걱정은 됐지만 무지헀으니까 ㅋㅋ 용감하게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일주일째,

내가 당당히 한 대답에 책임을 지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태생부터 대소변을 알아서 가리는 똘똘한 고양이만 길러본 나는

이곳 저곳 가리지 않고 쉬하는 몽이에게 적잖이 놀랐다.

배변유도제가 포함된 배변패드를 여러장 깔아두어도

꼭 가구나 기둥같은 곳에 여러차례 다양하게 쉬테러가 가해진 장면을 보고 멘붕하길 여러번.

매번 마음을 가다듬고, 원래 이런 동물인걸, 화내봤자 소용없어, 하며 자신을 타이른다.

그리고 청소를 평소보다 두배정도 자주, 열심히 한다.


몸이 약해 잘 걷지 못하고, 습진이 있어 몸을 자주 긁고, 

나이가 들고 눈물을 잘 흘려 몸냄새도 좀 나고, 이빨과 잇몸이 상해 입냄새도 지독한 몽이.

이녀석을 애지중지 사랑으로 보듬고 사는 미선언니가 진정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참이었다.

그리고 약간 부담도 있었다. 미선언니가 해줬듯이 왕자님처럼 몽이를 안고, 쓰다듬고, 케어해주기엔

나는 만질 수 있는 동물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보들보들 귀여운 요를도 하루에 서너번 쓰다듬는게 전부다.

(고양이는 워낙 쓰다듬는 것을 귀찮아하기도 하고)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란 몽이는 나에게도 계속 안아주고, 무릎위에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 몇번 받아주다가 아, 안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에 왔으니, 너도 우리집 법을 따라라.

폭풍검색과 까까의 조언대로, 쉬패드를 여러장 깔아놓고 그 위에 쉬를 하지 않으면 혼내기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아랑 곳 없이 쉬패드 아닌 곳에만 마구 싸더니, 그래도 요샌 쉬패드에 한번씩은 싸기 시작했다!

쉬패드에 싼 부분은 칭찬해주고, 바닥에 싼 부분은 싼 곳 수만큼 혼냈다.

혼내는 것도 나도 피곤하고, 옆집에 시끄러울까 걱정도 되고, 듣는지 마는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좋아지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대소변 치우기의 번거로움도 해소할겸, 오전 오후 두번씩, 바쁠때는 한번씩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처음에는 걷는 것도 뒤뚱뒤뚱 어딘지 어색했고, 기둥기둥 찾아 냄새맡는 것도 어설펐는데

일주일 산책을 해본 뒤로는 지리도 좀 아는 것 같고,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어제는 근조오빠와 40여분을 산책했다더니 

오늘은 나와 30여분 산책을 하고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더라.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처음에는 3-4분 걷고 힘들어서 걷지도 않던 녀석이 말이다!


좋아진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눈물도 좀 덜 자주 흘리게 되었고, 얼굴이 눈물자국으로 뻘겋던 것이 많이 좋아졌다.

습진도 조금씩 좋아지는지 몸을 긁는 행동이 약간 줄어들었다.

뒤뚱뒤뚱 뛰던 폼이 조금 편안하게 바뀐 것 처럼 보인다.

밥도 잘먹고 똥오줌도 푸짐하게 잘 싸고 ㅋㅋ (이 부분은 내가 힘들지만 어쨌든 건강하단 증거니까 다행이다)

구토하는 버릇이 있다던데 아직 한번도 안했다.


우리가 잘 해준 것은 공기좋은 탄천에서 산책 시켜준 것밖에 없으니

역시 사람이나 동물이나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한달간의 삶이 이녀석으로 인해 많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산책을 데리고 나가서 빨빨대고 잘 걸어다니게 된 몽이를 보고 무척 기뻤다.

잘걷는다고 칭찬해주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몽이도 기뻐했다.

사람아닌 생물과의 교감의 순간은 참 묘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아끼는 씨디장 아래에 오줌을 흥건하게 싸놨을 때의 분노는 아직도 생생하지만

컴퓨터 할 때 올려달라고 낑낑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지만

이럴 때 보면 뿌듯하고 귀여운 내 제자(?) 같달까....

너도 나랑같이 마라톤할래? ㅋㅋㅋ


아무튼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는 것이라는 교훈을 다시금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