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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여행이 줄 수 있는 모든 것

여행이 주는 모든 것

이번 여행은 면조에 의한 면조를 위한 면조와 함께하는 여행이고 싶었다.

난생 처음 내 선택에 의해 한 생명을 책임졌던 2012년 11월부터 내 삶의 화두중 하나인 'Helping'(도움이 되기; 요새 유행하는 힐링같은 느낌으로 방금 만듦 ㅋㅋ)을 내 남편에게 실행할 절호의 찬스여서 무척 기대가 되었다.

내가 책임지기로 했던 생명, 요를레이를 처음으로 오랫동안 혼자 있게 냅둬야 해서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지만, 꾸려뒀던 짐을 들쳐매고, 48시간 동안 최대한 요를이 쾌적하게 보낼 수 있도록 구비정돈한 집을 나섰다.

눈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닫는데 요를이 따라나오길래 ㅠㅠ 억지로 집안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는데 너무 서럽게 울어서 마음이 매우 아팠다.

하지만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 하므로 모질게 뒤돌아섰다.

결혼 후 처음 닥친, 어쩌면 둘이 함께 처음 겪는 위기(!!)와 변화를 앞둔 우리는 현실도피 겸 생각을 할 환경을 만들고자 주말 여행을 선택했다.

실로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배경은 담양, 주인공은 우리, 메인 테마는 '하심당'!

마음을 내려놓는 곳이란 뜻의 하심당은 우리가 묵었던 진짜 한옥 민박집으로, 백오십여년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의 귀함와 멋짐을 만끽중이신 주인아저씨의 너그러움을 자랑하는 멋진 곳이다.

여행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

늘 그 것을 바라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여행지에서 조차 지켜야 할 약속이 너무 많아지면 애써 떠났는데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떠나면 늘 넘치게 채워지는 것이 또 묘미랄까.

신선함, 즐거움, 맛있음, 깨달음, 편안함, 치유됨, 가르침, 새로운 만남, 인연, ... 짧은 기간동안 참으로 넘치게 많은 것을 얻어왔다.

게다가 내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아 그래도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반가움과 적당한 피로까지!

완벽했다.

메인테마라고 까지 얘기한 하심당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해봐야겠다.

150년된 본채, 100년된 사랑채로 이루어진 진짜 한옥으로, 멋드러진 홍매화나무, 뒷산 산책로의 대나무숲, 비가오면 만들어지는 폭포, 묵어가는 손님을 귀하게 여겨주시는 주인아저씨와 정갈하고 고상한 손맛을 지닌 주인 아주머니까지!

운치와 염치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게다가 방값도 싸고, 아침백반은 끝내주게 맛있고, 전통차 무한리필에 ㅋㅋ 수다쟁이 주인 아저씨의 뼈가되고 살이 될 좋은 말씀까지 공짜로...!

아아 진정 또 가야만 하는 곳이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 메기는 방식을 인용해보면,

별 하나는 '동종 분야 최고 랭크'

별 두개는 '이 곳에 가기 위해 여행 경로를 수정해도 될 정도'

별 세개는 '이 곳에 가기 위해 여행을 계획해야 할 정도'

라고 한다면

담양에는 별 두개반짜리 성일식당과 별 세개짜리 하심당이 있기에 계절마다 한번씩은 찾아가야 함을 결심하게 되었다.

정직함, 그리고 손님을 귀하게 여기시는 마음을 주제로 좋은 이야기 해주신 주인아저씨의 꿈은 너른 담양의 대지에 흙으로 만든 집에서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쉬다 가면서 치유받을 수 있는 사업을 해보시는 거라고 하셨다.

아저씨 화이팅! ㅎㅎ

차마시다가 알게된 수원사는 풋풋한 커플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일단 좁은 렌터카였지만 기차를 잘못 예매한 -_-;; 두 어린양을 도울 수 있어 기뻤고, 열심히 올곧게 살고있는 너무 귀여운 커플이었어서 함께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면조와 내가 너무 닮아서 남매인줄 알았다고 한 부분은 좀 실망이었지만... ㅠㅠ

진짜 그렇게 닮은건가?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러니 새삼 충격이다.

집에오니 요를이 너무 반갑게 야옹거리면서 반겨줘서 ㅠㅠ 너무 미안하고 안쓰럽고 또 기뻤다.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던 집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늑한 쉼터로 보인다.

보는 시각만 바뀌어도 완전 다른 공간같구나.

이제 푹 자고 일어나서 더 활기차게 살아봐야지.

질풍노도의 오춘기 두명이 떠났던 뜻깊은 여행.

아마 두고두고 계속 생각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