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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Visual Journal

정자도서관



끝내주게 더운 날이다.

점점 달궈지는 집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주루룩 흐른다.

남은 원두가루를 털어 아이스커피를 내리고, 오디쨈을 듬뿍 바른 토스트를 싸서 가방에 넣고 도서관으로 피신해 있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찬물로 몸을 한번 헹궈내고 나갔는데도 문을 나서자마자 땡볕에 몸이 녹아 다시 끈적끈적 해진다.


걸어가는 길이 생각보다 길다.

천천히 걸으니 15분정도 걸린 것 같다.

횡단보도도 두번이나 건넌다.

띄엄띄엄 있는 그늘을 찾아 뛰어다녔더니 힘까지 든다.

시원한 곳으로 피신해 가는 것인데 가는 길이 이렇게 더울 줄은 계산하지 못했다.


무슨 예술고등학교를 지나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다.

가는 길에 멋진 카페도 많고 맛있어 보이는 식당도 많았다.

도서관 앞은 마치 외국처럼 예쁜 건물, 나무, 꽃들로 꾸며져 있다.

우리동네 참 좋다.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천to the국 ㅠㅠ

시원해.

공공장소의 에어컨 사랑해요.


자료실에 책도 많다.

테이블 없이 폭신한 의자가 여러개 있고, 사람들이 많았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궁금해진 1920년대의 미국 작가들에 대해 쓰인 책이 있어서 한권 집어들고,

전부터 읽으려고 벼르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또 집어들어 쇼파로 갔다.

문학사에 대한 책은 그림도 많고 매우 두꺼워서 도서관안에서 대충 다 훑어볼 생각이라

약 두어시간 넘게 목이 아프도록 자세를 바꿔가며 꾸무럭거리면서 봤다.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가들은 물론 미국문학이니만큼 헐리우드, 브로드웨이의 영화와 연극에 대해서도 다뤘는데

모르는 작가가 정말 많았다.

가장 궁금했던 헤밍웨이, 스캇 피츠제랄드를 중심으로 흥미로웠던 하드보일드 작가들에 대해서 읽고,

중간에 여성문학이나 2차대전 시기의 허무주의 작가들에 대해서는 뛰어 넘었다.

그리고 다시 스크린플레이 작가들에 대해 좀 읽다가 내가 좋아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D.샐린저에 대해 읽고

(그가 정말 최근에 죽은 것을 알고 놀랬다.)

문학사에 남은 영화들에 대해 쭉 보고서는 덮었다.

이런 책을 보다보면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늘 놀라는데 (새삼스럽게 -_-;)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에 다 소화할 능력이 안돼서 이렇게 관심사만 훑어 읽고 넘어가버린다.

목이랑 팔도 아프고(무거운 책을 계속 들고 봤더니) 배도 고파져서 도서관카드를 만들고 하루키의 책을 빌려 나왔다.


지하 식당에 갔더니 면조가 신나서 돈까스를 먹겠다고 우겼다.

오늘은 돈을 쓰고 싶지 않아서 빵을 싸왔는데 ㅠ ㅠ 배고파서 안되겠다고 먹어야겠다고 때쓴다.

하지만 다행히(?) 현금이 둘 다 없어서 다음을 기약했다. 휴

빵이랑 아이스커피랑 마시는데 더운날이라 평소보다 더 달게 만든 토스트가 정말 맛있었다.

그래도 역시 도서관에서 먹는 밥은 나도 무진장 좋아하니까 다음엔 꼭 먹을테다.


집에 오는 길에 우리가 좋아하는 천객가를 발견했다.

정자점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기쁠수가!

조만간 외식 할 구실이 있을 때 꼭 오자고 다짐했다.

더위 피해 책보러 가서 다음에 외식해야 할 약속만 두개나 만들었다. -_-


이런 무덥찌근한 날씨에도 여전히 한가함을 유지하고 있는 좋은 동네다.

날이 선선해지면 더 걷기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