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갑자기 다들 존경스러워!!!

올해 초부터 뭔가 '대기업'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생겨서 간헐적으로 분당에 있는 SK C&C빌딩에 간다.
분당은 신비한 동네다.
큰 빌딩들, 밀집된 아파트촌, 그리고 식당거리, 카페거리.
내가 받은 인상은 참 '사는 사람' 혹은 '머무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 위주로 만들어논 동네같다.

내가 서울을 좋아하는 몇 안되는 이유중에
우후죽순, 계획보다는 필요위주로 생긴 도시의 복잡 다양한 모습이 끼여 있는데,
분당은 그 것과는 거리가 먼 도시의 모습.
물론 내가 좋아하던 우리동네의 흐트러진 모습들도 요새는 재개발로 인해 점점 사라져간다.
점점 서울을 좋아하는 이유가 사라져간다. 점점 멋이 없어져!

아무튼 이곳에서는 상대방을 부를 때 보통 성+직함으로 부르는 것이 기본이다.
그럼으로 형성되는 분위기가 제법 내가 관계하는 다른 커뮤니티와 다르다.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두분 말고는 사실 아직까지 같이 몇번 식사한 분들 성함도 모르는 상태.
그분들은 다행이도 나를 최디자이너라고 안부르고(혹은 최외주업자 -ㅁ-) 민희씨라고 불러준다.

직함들의 상하관계를 잘 몰라서 이것 저것 질문을 했는데,
담당자님이 오름차순으로 죽 말씀해주시는 직함들을 듣고있자니 정신이 아찔해지더라.
(아 물론 위로 올라갈수록 수입도 아찔해지더라.)

적어도 이 곳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의 대다수는 아래에서 위로,
즉 별다른 초이스 없이 그저 위만 바라보며, 죽어라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담으로 요새는 대학 1학년 때부터 MT도 안가고 토익이니 취업준비 하는 애들이 많다고 하시던데,
그럼 그녀석들은 4년내내 바라온 대로 졸업하자마자 별다른 초이스없이 직장만 죽어라 찔러볼 것이 아닌가!
알맞은 직장을 찾아 다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다른 방식의 삶을 전혀 고려할 수 없는 분위기라니...

사실 나만해도 그렇다.
모든 어른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취업활동을 시작도 안해보고,
일단은 그럭저럭 프리랜서로 꽤 '행복하게' 먹고 살고 있다.
물론 지금의 생활에서 돈만 좀 더 번다면 아주 행복하겠지만,
그건 어느 일, 어느 만큼의 수입이 있어도 늘 계속 그런식으로 바랄 것 같다-_-;
(아 물론 지금은 넉넉하기는 커녕 모자른 경우라서 좀 더 벌도록 머리를 써야 한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하고싶은 일만 하려고 한다.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하라고 어릴 때부터 죽어라 혼났지만
결국 졸전과 치과치료를 제외하고는 내 인생에서 뭔가가 하기 싫을 때 억지로 참고 한적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특히 반복되는 지겨운 노동은 죽어라 싫어하는데, 예를들어 지하철 칸칸마다 물건팔러 다니면서
똑같은 멘트를 반복해서 내질러 대는 일 같은건 죽어도 못할 것 같다.
대신 지하철 칸칸마다 다니면서 그 칸에 감도는 분위기를 각자 다르게 묘사하라면 재밌을 것 같다.
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남의 선택에까지 책임을 지기는 싫다.
머릿 속으로 떠올렸을 때 구릴 것 같은 그림은 그려놓고 나면 정말로 구리고 기분은 초 더러워진다.
반대로 멋질 것 같은 그림을 기대하며 그릴 때는 최대한 내 이상과 가까워 질 때 까지 잠도 안자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아무튼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대부분의 직장이 가진 상하관계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고 나면, 슬슬 하기 싫었던 공부도 하고 싶어 지듯이
내 스스로의 타이밍만 잘 깨닫고 컨트롤한다면 딱히 '싫다'거나 '안된다'라고 딱잘라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졸업하자마자 꼭 취직을 해야만 했다면,
그 것도 1학년 때부터 준비한 토익성적, 학점, 어학연수 등의 스펙을 토대로 큰 회사의
어마어마한 경쟁율을 뚫고 들어가야만 한다면, (하지만 일단 학벌이 딸려? ㅋㅋ)
위에 길게 나열한 '나'에 대한 평가 따위는 일단 접어야겠지. (평가를 내릴 필요나 있을까?)
들어가서도 사회/비즈니스 부분 베스트셀러 작가가 써 둔 책의 내용처럼 일하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경쟁하고...
문화생활? 나중에 돈벌고 해도 늦지 않아, 연애? 삶의 양념일 뿐 꼭 필요한 것은 아냐 라고 자위하며,
이미 끝난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을 사내 잡지의 기사를 감수하며,
나 자신 보다는 팀장님, 부장님의 취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겠지.
클라이언트나 나의 생각보다는 상사의 생각대로 디자인하겠지.
오 마이 갓.

난 당분간 이대로가 좋아.
갑자기 다들 존경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