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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파티. 축하하고 베풀고 즐기고.

파티장에서 가져온 알록달록 예쁜 꽃

백신을 2차까지 맞고 2주가 지났다. 전보다는 좀 마음이 편하게 이곳저곳 다니고 있다. 어제는 매우 오래간만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다녀왔다. 동료의 생일파티였다. 원래는 100명 이상 초대하고 싶어 했는데 코시국으로 인해 60명까지 밖에 초대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 만큼 엄청난 외향인인 동료 R의 생일파티다. 나와는 사실 자주 만나거나 친하게 지낸 적은 없지만 여러모로 소외(?)된 독일팀에서 동병상련을 느끼며 같이 일한 지 3년쯤 되니 온라인으로 목소리만 들어도 반갑기는 하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나도 생일파티에 초대해 줘서 다녀왔다. 한동안 날씨가 춥고 흐렸는데 기적처럼 다시 덥고 맑은 날이었다. R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R이 두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서 발랄한 분위기였다. 술과 음식을 실컷 얻어먹은 데다가, 근 2년 만에 다 같이 만나는 동료들이 너무나 반가웠고, 또 집에 올 때는 장식용으로 쓰인 꽃도 얻어왔다. 행복했다.

 

사실 난 파티같은 자리에서 사람들과 스몰 톡 위주의 잡담을 주고받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일단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파티는 나를 빼고는 전부다 독일인인 상황, 그 와중에도 이곳과 좀 더 남쪽인 슈배비셰 지역 사람들이 사돈관계로 모여 아주 많은 '지역 차이'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물론 나는 아는 것도 없고, 이야기를 들어도 내 짧은 독일어로 인해 이해가 안 되었다. 또한 내 독일어 시험 이후로 동료들도 나랑 최대한 독일어로 대화해 주려고 하기 때문에 아주 고마웠지만, 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워낙 오래간만이기도 하고, 즐기진 못할지언정 스스로 빼면서 아웃사이더가 되지는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민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옷도 잘 차려입고 갔고, 용기내어 알듯 말듯한 얼굴의 사람에게 인사도 건네고, 내 부족한 독일어와 화술로 인해 대화가 빨리 끝나버리더라도 나는 즐겁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술 한잔씩 더 하며 잡담하고 있을 때 생일 당사자인 R이 술에 잔뜩 취해서 우리 테이블을 지나가다 멈춰서는, '나는 지금 너무너무 기뻐, 이렇게 행복한 적 처음이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여기 가득 있고, 날씨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너무 재밌어. 너무 최고야' 이런 말을 해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해졌다. 그리고 10년 후 50살 기념 파티 때는 자기가 원래 바랐던 대로 100% 스탠딩으로 할 테니 다들 각오하라고 했다. 그렇구나, 10년마다 큰 생일파티를 하는 거구나...?!

 

내가 유일하게 준비하고 주최해본 행사는 내 결혼식뿐이었다. 결혼식 준비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것과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의 괴리가 스트레스였고, 초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인터랙션 할 일이 별로 없었음에도 그들을 접대하기 위한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다. 이후로 파티나 행사를 주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동네 이장님 스케일의 생일파티를 기획하고 준비해서 주최한 당사자가 저렇게 행복해하며 다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왜 유럽 사람들이 파티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언젠가 나도 내 삶에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맛있는 먹을거리와 음료, 그리고 근사한 시간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도 약간 꿔 보았다.

 

그런데 역시 되게 피곤하긴 했다. 오늘이랑 화요일까지 또 사람 안 만나고 푹 쉬고, 면조 친구들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사교란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