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달 게으름을 피웠다. 공부도 운동도 책읽기도 슬렁슬렁 하거나 아예 안했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훈련도 관뒀다. 재택근무도 더 자주 하고 있다. 성실한 사람으로 사는 것을 좀 소홀히 하고 게으름을 실컷 피우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코비드 19 바이러스가 유럽에서도 크게 유행을 하게 되었다. 사실 여기도 (내 예상으로는) 한국과 다를바 없었을텐데 그동안 유럽인들은 이게 본인들에게 닥칠 일이 될거라 예상을 안해서 검사조차 안하고 있었던 듯 하다. 독일과 중국의 산업쪽 관계만 해도 한국과 비교 할 때 규모면에선 더 클지도 모르는데. 비즈니스 트립, 컨퍼런스, 관광 등 교류가 결코 적지도 않으면서 너무 안일했다. 그리고 지금 독일 정부는 어차피 70퍼센트가 올해 말까지 감염 될 것이므로 무리해서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개개인의 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를 지키라고. 제발 사람들이 이 것만이라도 잘 지켰으면 좋겠지만, 글쎄.
이 곳의 의료시스템은 더 난감하다. 서울처럼 아픈 사람이 쉽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개인 병원 같은 시설도 많지 않고, 사실 어지간한 병원들은 예약 잡기도 어렵고 가서 기다리려 해도 노령화가 심한 사회인만큼 빼곡한 환자들 틈에서 순번을 오래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의사를 만난들 전문적인 처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도 의사의 입을 통해 컨펌을 받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만, 제대로 검사를 받았다는 느낌도 받기 힘들다. 기계를 써서 검사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보통은 열을 재고 청진기로 소리를 들어 진단 할 뿐이다.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약보다 크랑켄슈라이붕(병가제출용)을 써 준다. 건강한 사람이 걸린 가벼운 감기같은 계절성 징후는 사실 쉬는게 가장 좋은 처방이기는 하다. 하지만 장염이나 세균성 질병도 딱히 항생제를 처방해 주지 않고, 장염이 오래되어 약해질대로 약해진 사람에게도 약대신 천연 효모를 처방해 주는... 어쩐지 좀 민간요법 같은 처치를 받고 있다. 그래서 병원에 예약하고 찾아가 안되는 독일어로 설명하고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기다리고 하는 등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스스로 평소에 컨디션 관리를 해서 오히려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는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예상만큼 일상이 대 위기는 아니다. 가게마다 텅 빈 화장실 휴지, 손세정제 칸을 보면 아직 집에 1-2주간 쓸 것이 남아있기는 해도 마음이 좀 심난해지는 정도. 홈오피스를 전면적으로 하고 있는데, 원래 절반 정도는 홈오피스를 했었어서 딱히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출퇴근을 안해도 되어서 몸이 편하다. 평소에도 집순이인 나는 오히려 만날 약속을 취소할 구실이 생긴 것이 기쁘다. 친구들 모임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어서 감기기운이 있는 나만 빠지기로 했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모임은 전부 다 모임 자체가 취소 되었다. (후레이!) 솔직히 말해서 온갖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 본인보다 훨씬 위생적으로 살고 있는 아시아 사람들만 가만히 냅둔다면 오히려 탄소배출량도 줄고 지구가 한숨 돌릴 틈 주는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아, 회사의 글로벌 이벤트도 다 취소가 되었다. 회사 입장으로 생각하면 씁쓸한 일이지만 딱히 그 글로벌 이벤트로부터 혜택은 못받고, 뒤에서 지원만 해야 했던 직원1의 입장에선 너무 좋다. 단 하루의 행사를 위해 수만평의 행사장 카페트를 다 뜯어내고 바꾸고, 부스를 만들었다 철거해서 다 버리고, 온갖 나라에서 미국으로 날아가서 수천피스의 스시와 수백갤런의 커피를 컨슘했다며 자축하는 행사는 솔직히 내 눈엔 너무 낭비였고, 그게 고객을 위한 최선인건지 공감 할 수 없었다. 행사가 불러올 무형의 가치를 강조하며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쓰레기를 생산해내는 디자인에 일조하는 것이 가장 마음 불편한 포인트였기에 올 해는 안해도 되어서 좀 다행이다.
물론 홈오피스가 당연히 가능하고 권장되는 인프라가 갖춰진 회사를 다니고 있고, 아직은 내 밥그릇에 대한 위기가 덜 느껴지는 상태여서 내가 이렇게 지구걱정이나 할 수 있는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구가 없으면 어차피 나랑 내 고양이들도 못사니까 당연히 걱정해야 하고, 기왕 바이러스 무서워서 호들갑 떠는 김에 환경에 덜 영향을 주는 생활 형태도 다같이 실천하고 고민했으면 좋겠다. 난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의 과학자들 말처럼 정말로 지구가 이대로는 안되겠어서 자정작용으로 지구에게 가장 해가 되는 바이러스인 인류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바이러스를 활성화 시키는 것임을 좀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