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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집단적인 실망과 당황과 공포

요를의 방해

때는 바야흐로 전염병의 시대 (!) 당혹스러운 뉴스가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고 있다. 전염병을 다룬 문학작품들(그래봐야 페스트 빼고는 좀비물만 읽은 것 같지만)이 그린 한탄스러움이 문학적 허구만은 아니었다. 퍼지는 경로도 비슷하고, 사람들의 의식 변화도 비슷하고, 확진자를 욕하고 물어 뜯는 것도 비슷하다. 병과 혐오가 뒤엉켜서 악의적인 기운이 전세계에 가득하다. 한국에서는 한 집단이 그 비난의 중심에 있다. 처음에는 그 비난의 대상이 막연하게 '중국'이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욕해도 괜찮은 사이비 종교집단이 되어서 더 많은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정부를 늘 까왔던 사람들은 모든 잘못을 정부로 돌리고 있다. 아무튼 욕할 대상이 몹시도 필요한 순간인가 보다. 아무튼 바이러스 전파의 중심에 선 것은 확실히 ㅅㅊㅈ가 맞는 것 같다. 한국의 컬트적인 모든 집단들이 그렇듯이 전염병에 취약한 문화(같은 그릇 내의 음식 공유, 인간군집이 밀폐된 곳에 오래 머무름...)를 등에 업고 어마어마하게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전파해내고 있다. 특정 사이비 집단을 욕하고 싶은 마음도 관심도 없는데, 그 어마어마한 숫자와 영향력에는 너무 놀랐다. 정체조차 모호했던 인간 집단이 수만명이 모여서 행사를 하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어디인지도 궁금하고(정말 궁금하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떳떳히 밝힐 수 없는 것을 굳게 믿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부추길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분노와 실망, 공포를 줄곧 접하는 것이 피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같은 양의 혐오가 향했던 대상의 성질(여성, 외국인, 특정 정치적 성향...등 둘로 갈라져 싸우기 좋은 구도)에 내가 속하지 않는 굉장히 드문 때여서 오히려 휴식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곳에서 나 나름대로의 투쟁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유럽에서 이 바이러스는 한국보다는 더딘 속도로 퍼지고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에 내가 잘 가지 않고, 지금은 특히나 더 신경을 많이 써서 조심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혹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더라도, 기본적인 면역력이 나쁘지 않은 30대는 체온관리와 감기 치료 수준의 관리로도 낫는다고 한다. 오히려 걱정은 다른 부분에서 많이된다. 이 곳에 있는 온 인종의 아시안을 향한 겉잡을 수 없는 혐오와 그로 인해 드는 위축감. 예를 들어 주말에 파리 여행을 가려고 오래 전부터 예약을 해 뒀는데 하나도 기대가 안되고 걱정만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텔이나 좀 좋은 곳으로 예약하고 호텔에서 쉬다 올 것을 하는 생각도 들고. (저렴한 것 빼곤 딱히 장점이 없는 무서운 동네의 호텔을 예약했다.) 썩 유쾌한 때는 아니다. 파싱(겨울이 끝난 것을 축하하며 독일 전역에서 사람들이 코스튬을 하고 행진하는 축제)기간인데, 바보같은 옷차림과 메이크업을 하고 즐거운 독일인들 사이에 껴서 그런걸 즐길 기분이 아니다. 그들과 나의 심적 대비감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끝없이 속으로 대뇌인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뭔가 문제가 있으면 그들의 문제다. 내가 주눅 들 필요와 이유는 전혀 없다. 당당하게 살고, 최선을 다해서 일상을 지켜야 한다.

 

여기저기서 한국행 또는 근처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실망하고 우울해 하는 소식도 들린다. 자영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가 말도 못하게 어려워진 사장님들의 소식과 함께 휘청거리는 소식도 들린다. 아무튼 이 곳에 살면 한국이란 국가와 나를 떼어 낼 수 없다. 창피하고 암담한 소식이 어서 전환되는 국면을 맞았으면 좋겠다. 어마어마한 희생과 노력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전면돌파 하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와 현장의 의료진 여러분 노고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그 보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