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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집안일의 날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하고 싶던 요리를 실컷 했다. 한동안 요리에 재미가 붙은 남편이 독점적으로 요리를 한 덕에 얻어먹어서 좋긴 했는데, 그래도 역시 내가 만든 맛이 그리웠다. 또 이것 저것 떨어진 재료가 많아서 장을 봐야 하는 김에 집 안 저장식품 팬트리가 있는 창고도 정리를 좀 했다. 더 많은 것을 쌓아 둘 수 있게 되었음! 그리고서 장을 무려 50유로어치를 봤다.

 

아침에 주말장터에서 끝물 아스파라거스와 햇감자를 샀는데, 거기에 곁들일 쥬씨한 익힌 햄을 샀다. 양파, 버섯, 생강 같은 갖춰야 할 채소도 샀다. 갖춰야 할 과일 중 하나인 바나나와 세일중인 블루베리도 지나가며 넣었다. 다 떨어진 딸기쨈, 버터, 브리오슈 등 늘 아침밥으로 먹는 것들과 함께 곧 다 떨어질 것 같은 설탕, 소금, 오트밀크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평소에는 잘 사지 않는 레드와인 한 병을 집었는데, 볼로네제를 대량으로 만들 때 쓸 것이지만 마시기에도 좋아 보이는 것으로 지역 생산 와인 코너에서 골랐다. 식빵 굽는 것에 도전해 보려고 강력분도 담았다. 언제 도전할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은 질색하는 도전심이 필요한 파스타를 두 종류 샀다. 하나는 시금치가 들어간 초록색 딸리아뗄레, 또 하나는 통밀 스파게티. 영양면에서 조금 더 좋을 것이다. 시금치 딸리아뗄레는 집에와서 바로 삶아먹었는데 맛이나 텍스쳐도 괜찮았다. 탄산수도 담고, 나초칩과 치즈 딥도 담고, 감자칩도 담고 하다보니 카트에 빈 바닥이 안보였다. 혼자와서 이렇게 많이 담은 적은 오랜만이라 엄청 재밌었다. 꽤 오랫 동안 사야 할 품목 서너개만 샥샥 집어 나오는 식으로 장을 봤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랫동안 먹을 식품을 많이 샀는데도 50유로밖에 안나와서 조금 놀랐다.

 

딸리아뗄레를 삶아 어제 만든 볼로네제 소스와 함께 저녁을 먹고서 달콤한게 먹고싶어서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게 뭐 없을까 하고 찾다가 생강과 카다몸을 넣고 파운드 케이크를 구웠다. 이게 과연 케이크로써 의미가 있을까 긴가민가했지만 어차피 밀가루와 기름과 단거를 넣고 구우니까 기본은 하겠지 싶었는데 과연 엄청 고급스럽고 맛있다. 문제는 케이크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것 저것 줏어먹기도 하고 차도 내려 마시고 해서 배가 부르다. 내일 아침으로 먹어야지.

 

하루종일 부엌과 식료품 창고를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다 보냈다. 정리정돈과 함께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던 브리타 정수기 필터도 갈았다. 냉장고 안에는 소분한 신선한 샐러드가 한가득 있고, 각종 파스타와 캔, 식물성 우유가 팬트리에 그득하다. 당분간 먹고 마실 것 걱정은 전혀 없겠다. 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