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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책임감 있는 게으름뱅이


구지 내가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도 나는 게으르고, 대부분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 것도 같이 알고 있다. 몇 몇 사람들은 내가 생활은 게으를 지언정 정신(?)은 게으르지 않다고 좋게 평가해 주기도 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정신도 게으른건 마찬가지이고, '게으른 사람'이 아닌 '게으름' 그 자체를 의인화 한 극이 있다면 내가 게으름을 연기해도 될 것 같다.


고양이가 아무리 게으르다고 해도 어쨌든 사는데 필요한 것은 하고 살 듯이,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는 데 필요한 해야 할 것이 얘네에게도 꽤 고된 일이다. 일단 외모의 귀여움(먹고 사는데 제일 중요한 가치)과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그루밍만 해도 엄청난 중노동이다. 내 몸에 털이 수북하고 그걸 일일히 째만한 혓바닥으로 온 몸을 아크로바틱하게 뒤틀어가며 다 핥아내야 한다고 상상하면 그냥 머리털만 좀 난 인간으로 태어난게 다행이다 싶다.


결국 내가 말하는 게으름은 게으름을 내재하고 그걸 핑계삼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회피하려는게 목적이 아니다. 사실 나는 게으른 인간이므로,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분석해서 그 중에서도 꼭 해야 할 것만 우선적으로 하고, 남들이나 내 스스로 보기에 진짜 한 일의 양보다 더 나아보이는 결과를 목적으로 한다. 한마디로 효율성을 추구하는건데, 따라서 쓸데없는 노력을 제일 싫어한다. 이래서 나같은 인간은 덕질도 잘 못하나보다. 덕질에는 정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과 체력과 인내심과, 그 모든 것 이후에 마지막으로 돈이 필요하다. 돈만 있다고 덕질을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물론 돈도 없다.


그리고 포기가 빠른 것도 게으르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난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재빨리 내가 들여야 할 노력을 꽤 구체적으로 계산해 내는 버릇이 있는데, 노력대비 만족도를 따져봤을 때 할 가치가 없다면 우선순위를 500위 뒤 쯤으로 미뤄버린다. 그 말은 곧 포기한거다. 하지만 의식상에는 부채의식으로 남겨둔다. 안그러면 진짜 쓰레기가 되는 항목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청소라든지... 내가 우선순위를 미뤄뒀을 뿐인데 결국 나보다 참을성이 없는 남편이 먼저 해버리게 되면 마치 내가 내 할일을 미룬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이건 우리의 우선순위의 다름일 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몸의 피곤함도 그렇지만 정신의 피곤함이 급 몰려 올 때가 있는데, 이번주가 그랬다. 혼자서 쾌적하게 지내던 생활에 익숙해 졌다가 인싸 남편이 독국으로 귀국 후 친구들과 연말 약속도 있었고, 이래저래 부산했다. 그래서 어제는 재택근무 하다가 머리가 딱 멈춰버려서, 2시에 조기퇴근 해 버리고 빨래를 개던 도중에 잠들어버렸다. 빨래는 왜 갰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조기 퇴근한 자의 마음 속에 죄책감이 시켰나보다.


아무튼 이렇게 게으른 나도 해야 할 일은 하기 때문에 오늘은 논문을 최대한 많이 써야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게으르기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들일 노력의 양의 계산은 다 끝났고, 그게 못 할만큼 엄청 버거운 양은 아니니니까 내가 논문을 포기 안하고 쓰기로 한 것이므로. 고로 내가 하려고 결정 한 것은 할 만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결정한거고, 따라서 억울한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일도 마찬가지로 이젠 어느정도 요령과 노하우가 생겨서 내가 너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가격을 비싸게 불러버리거나(완곡한 거절) 시간이 없다고 단도 직입적으로 거절 할 수도 있다. 논문도 일처럼 생각하고 하므로 데드라인안에 다 쓰긴 할 것이다. 난 책임감 투철한 게으름뱅이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