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리더기를 한국에서 사 온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북을 끝까지 단숨에 읽는 것이 나로썬 쉽지가 않다. 워낙에 천천히 읽기도 하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쉬는 시간도 일부러 가질 만큼 이야기를 몸 속에 스미고, 상상 속 이미지를 채우는 시간이 나한텐 필요하다. 종이책이 좀 더 끝까지 읽어내기 쉬운 이유는 책 표지와 함께 내가 읽다 남긴 정도가 계속해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 것을 보면 자연스레 지난번에 만들다 만 미완성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 것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들어서 다시 책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이북은 잠금 화면이 보일 뿐이다. 또한 대게 공공도서관의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5일이란 대여기간이 나에겐 턱없이 부족하다.
오늘 다 읽은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책이고, 단 2권으로 이루어졌지만 의식적으로 아껴보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느리게 읽기 때문에 다 읽는데 3주~4주 정도가 걸렸다. 기간이 애매한 이유는 처음에 시작했다가 너무 초반에서 멈추는 바람에 안 읽고 쉬는 동안 앞 내용을 까먹어서 다시 읽기 시작했음.
이제 소중한 한국어로 된 소설책을 다 읽어버려서 다시 이북으로 봐야하는데 다음 책을 고르는데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겠다. 정말이지 이북으로 책을 끝까지 읽기란 생각보다 더 많은 기술과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다. 일단 정보서는 거의 읽을 수 없다고 본다. 여러번 시도했지만 다 30~40% 까지 보다가 때려쳤다. 정보서는 목차를 먼저 공부하고, 원하는 부분을 먼저 읽거나 아니면 책의 흐름을 따라가더라도 앞이나 뒤의 내용을 수시로 확인 할 필요가 있는데, 페이지 한 장 넘기기도 벅찬 내 이북리더기로는 무리다. 그래서 내가 그 정보가 정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컴퓨터로 찾아서 pdf파일로 보게 되더라. 그렇지 않은 경우들은 그냥 때려쳤다.
그렇다고 수필이나 시는 더더욱 말이 안된다. 수필이나 시야말로 한 단락마다 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야 하는데, 쉬는시간을 가지고 나서 다시 책을 펴서 새로운 다음 작품을 읽을 의욕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남은 양을 계속 체크해야 하는 실물 책의 부담감이 없이 오롯이 컨텍스트만 감상하는 것은 나로선 무리다.
결국엔 소설책인데, 이 또한 선택에 애로사항이 있다. 일단 읽고 싶은 소설책은 대게 비싸다. 실물이 없는 이북 컨텐츠를 살 때 만얼마를 줘야하면 일단 망설이게 된다. 만얼마로 다른 온라인 컨텐츠를 즐기면 사실 몇달간 풍요로운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북으로 선택하는 소설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공서를 제외하면, 내가 일년에 책을 많이 읽어봐야 20권정도 읽을 수 있는데, 그 중에 필요한 정보가 담긴 논픽션 책을 제외하고 나면 사실 소설책은 10권 안팎으로 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정말 재밌고, 작가의 팬이고, 출간과 함께 바로 보고 싶은 하루키 책 같은 것은 어떻게든 실물로 구해서 보니까 결국엔 '그 정도는 아닌' 작가나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잘 몰랐던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게 알라딘에서 엄청 싸게 세일을 하거나, 공공도서관 사이트에서 빌릴 수 있는(인기있는 작품은 대출 권수에 제한이 있어서 좀처럼 빌리기가 어렵다.) 책 중에서 고르게 된다. 결국 대중적인 인기도 조금 덜 하고, 내 안에서 전혀 인지도가 없는 작가의 작품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조합 아닌가. 그래도 그 와중에 끝까지 읽은 책이 있다. 아일랜드 작가의 Ken Bruen의 하드보일드 소설인데 'The Guard'라고 한국어로는 '밤의 파수꾼'으로 번안되었다. 기차를 오랜 시간 타고 여행중이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라 5일 안에 읽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책을 한 권 다 읽었는데 제목이 기억 안나다니! 표지를 몇번이고 확인할 수 없는 전자책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다.
아무튼 좀 더 전략적으로 책을 고를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당분간 이북을 사지는 않으려고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책 중에서 재미있어서 자꾸자꾸 뒤가 궁금한 책 위주로 빌려 보고 싶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걸 어떻게 찾는건지 모르겠다. 보고싶은 영화를 고르는건 소설에 비하면 정말 쉽다. 좋아하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위주로 고르지만 때로는 좋아하는 배우를 따라 골라도 어느정도는 성공한다. 따라갈 인재풀(?)도 넓고, 상업성이 강하다보니 실력 좋은 사람들은 자꾸자꾸 새로운 작품을 부지런히 만드니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볼 것이 넘치고 넘친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가 혼자서 오랜기간 공들여서 써서 출판하는 것에 비해 나는 최대 한달이면 다 읽어버리기도 하고, 또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보니 좋아하는 동시대 작가도 별로 없고, 새로운 고전 작가의 작품을 읽을 인내심도 부족하다. 내가 좋아했던 책들 기반으로, 다른 책 추천해주는 사이트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