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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먹보 친구가 필요해

각종 매체에서 쓰이고 있는 영어 단어 Foodie처럼 맛을 탐닉하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미식가와는 다르게 먹는 행위 그 자체 또한 맛있는 음식 못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들. 물론 맛있는 것을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매 끼니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살아가는 작은 목표 중 하나고, 맛있는 것을 큰 희생없이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 사람들은 또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심지어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ㅅㅇㅇ는 나를 일컫기를, 한 끼에 25000원을 지출하면서 함께 장어 덮밥을 먹으러 갈 수 있는 유일한 친구라고 했다.


캐나다인 친구인 좐도 그렇다. 삶과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고, 아주 디쎈트한 파인다이닝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맛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나이도 나보다 좀 많고, 이것 저것 경험이 많아서 어디 유명한 도시에 놀러 갈 일이 생기면 항상 맛집이나 가볼만한 곳을 묻고는 한다. 덕분에 이번에도 코펜하겐과 스톡홀롬에서 맛있는 것들로만 배를 채우고 다닐 수 있었다. 10년전에 토론토에서 만나서 친구가 된 뒤로 한국음식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재작년에는 같이 한국 여행까지 했는데, 정읍의 한 재래시장에서 피순대를 먹고서 맛의 의미를 찾는 모습을 보고 얘는 진짜구나 싶었다. 참고로 나도 그 때 피순대를 처음 먹어 봤는데, 나는 영 별로였다.


여기와서 같이 어울리는 친구중에 디반슈도 그렇다. 인도인 친구인데 레스토랑 같은데에서 알바를 많이 했었고, 먹는 것에 유독 관심이 많다. 그리고 모태 베지테리언이다. 이 친구와 함께 주변에 베지테리언, 비건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한국에서는 사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종교 등의 이유로 인해 특정 고기를 아예 안먹는 친구들도 있다보니 요즘에는 그냥 맘편하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요리하거나 나눠먹을 음식을 고를 때는 무조건 채식으로 선택한다. 그러다 채식에 관심이 생겨서 다큐멘터리도 보고(옥자 전후로 트랜드기도 했고), 이래 저래 스스로를 두고 실험도 해 봤다. 나는 장이 예민해서 고기를 많이 먹으면 어차피 설사를 하니까 채식을 하면 몸이 편해서 좋다. 그래도 평생 먹어온 고기가 가끔 먹고 싶을 때는 먹는다. 한국 식문화에서 사실 고기나 생선을 배제하기가 많이 어렵고, 어차피 동물성 식품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면 말 그대로 줄이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끊는 것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아무튼 음식에 관심이 아아주 많은 이 인도사람 친구 덕에 인도 음식에 대한 레시피도 많이 알게 되었고, 음식의 또 다른 지평에 관심이 생겼다.


조금 안타까운게 있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남편이 썩 Foodie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 그냥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인데, 나의 이런 기질 덕분에 다양한 음식에 약간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정도다. 비싼 맛집은 일단 싫어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한 끼 가격을 넘기는 음식이면 아무리 맛있어도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성비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차라리 요리하는 데에 조금 더 열정이 있는 듯 하지만 주로 게으름을 피우므로 케밥이나 라면으로 때우려고 할 때가 많아서 좀 불만이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구지 남편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레스토랑에 가 보고 싶을 때 꼬셔서 함께 갈 친구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친구들이 다들 학생이고 가난해서 그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아직 나와 함께 맛의 탐구여행을 할 만큼 먹는 것에 환장하고, 뭐든 일단 가리지 않고 먹어 볼 의향이 있는 사람은 못 만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