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 보았다.
아랫입술 선에 맞춘 똑단발이 목표였다.
너무 이상하게 잘라버리게 되었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미용실을 갈 예정이었다.
작년 겨울 시작할 때 미용실에 가서 잘랐으니, 대략 8-9개월만이다.
그동안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는 산 속에서 수행하는 사람처럼 거칠고 야성적으로 자라 있었다.
머리를 땋거나 묶고 다녔지만, 도저히 안되겠어서 여행 다녀오고 나서 미용실을 가려고 했는데, 독일에서 미용실에 가려면 일단 독일어로 전화해서 예약을 하고, 예약날을 기다렸다가 가서 머리를 깎고서 감겨주면 스스로 헤어드라이어로 말리고 나와야 한다. 딱 한번 경험해 봤는데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게다가 헤어드레서가 아시아인의 머리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모가 더 두껍다고 한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 친구에게 추천받은 일본인 디자이너가 근무하는 샵을 알아놨는데, 기차타고 40분 이상 가야 하고, 가격도 최소 50유로라고 하니 엄두가 잘 안나더라.
사실 한국에서도 이정도 금액을 머리 자르는데 쓰기는 했었지만, 나도 모르겠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알아서 트렌디하면서도 커스터마이즈드 된 훌륭한 디자인을 선보여 주시던 디자이너분의 작품인지라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그 분이 어느정도 만족감을 줄 것인지 도전에 대한 결과가 미지수였고, 또 최소가 50유로라니까 만약 그분이 실력이 좋아서 최소가 아닐 경우 난 어찌하면 좋을지 무서웠다.
이런 이유로 스스로 한번 잘라보고, 영 이상하면 미용실에 가서 뒷감당을 부탁하기로 했다.
유투브 비디오에서 self haircut, short hair 등의 검색어로 나온 영상들을 여러개 보고서 가장 소박해 보이는 방법을 따라하기로 했다.
눈썹가위와 고무줄 두개 만으로 가능한 헤어컷인데, 그야말로 정공법으로 미용실에서처럼 머리를 세 파트로 나누어 안쪽부터 길이맞춰 잘라나가는 방식이다.
원래 머리에서 대략 4센치미터 정도를 잘라냈는데 썩둑썩둑 잘라나가는 느낌이 쾌감이 있었다.
양 옆 길이맞추기가 꽤 어려웠고, 머리가 자꾸 밖으로 뻣치는지라 눈으로 보고서 길이 맞추기가 더 힘들었다.
다 잘라갈 쯔음에는 손가락도 아프고 힘들었다.
결과는 그럭저럭 봐 줄 만한 단발머리가 되었다.
중학교 입학할 때 처음으로 짧게 잘랐던 단발머리가 생각났다.
꾸불텅대는 반곱슬머리여서 인상을 한 껏 더 순박해 보이게 했던 단발머리.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 때보다는 조금 더 어울리게 된 것 같다.
뒤에서 볼 때의 쉐이프는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지만,
남편에게 물어보니 많이 어색하지는 않다고 해서 가위질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내가 거울 보면서 계속 원하는 모양이 되게 다듬어가고, 또 애초에 큰 기대가 없었던 터라 만족감이 높았다.
이대로 조금 더 길어서 다음번에는 더 반듯하게 자를 수 있을 것이다.
프렌치 시크 뱅을 스스로 구현하는 그 날까지!
독일에 와서 많은 것들을 '자급자족'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주로 요리가 그러한데, 김치를 스스로 담근다거나, 소스 등을 직접 제조한다거나 하는 경험은 서울에 살 때는 할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다. 심지어 깻잎을 심고 길러서 재배해서 먹기도 했다.
집안에 고장나거나 부서진 곳이 있으면 스스로 고쳐야 한다.
남편 머리는 내가 깍아준지 오래 되었다.
점점 생활이란 것에 자신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 우리는 전시나 자연재해를 통해 원시생활을 하게 된다면, 어도비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들 이라고 친구들끼리 자조하며 농담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난 이제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만들 줄 안다!
그리고 유투브에는 정말 자잘하지만 쓸모 있는 가르침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오늘 친구가 추천해서 재미있게 들은 '김생민의 영수증'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돈을 한푼도 안쓰고(준비물은 다 집에 있는 것으로 하고, 살빗은 없어서 고양이 것을 빌렸다.) 머리를 깎아서 더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