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쓰는 것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 남편 덕분에 우리집 재정관리는 거의 내가 하고 있다.
재정관리라고 해봤자 공과금을 낸다든지 하는 잡일 외에는 단순히 카드를 들고 다니며 긁는 역할이다.
당연히 우리의 소비지출에서 가장 큰 퍼센테이지를 차지하는 것은 식비이고, 식비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외식의 비중이 크다.
1~2월엔 가족행사나 명절이 있었어서 한달 예산을 연거푸 넘겨 써버렸는데, 그 때문에 한동안 남편이 매우 불안해 하며 나의 재정관리 능력에 의심을 보였다.
내가 너무 과소비를 한다는 듯한 태도로 일일이 내가 쓰는 돈에 대해 딴지를 걸었었다. 억울했다.
그래서 난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카드들의 내역을 뽑아 보여줬고, 명절 등으로 인해 현금으로 지출된 금액분을 알려줬다.
당연하게도 생활의 유지를 위해 정기적으로 나가는 금액을 제외하고는 딱히 뭔가 사지도 않았고, 대부분 식비였다. 매일 자동차로 학원을 다닌 덕에 기름값을 약간 더 쓰긴 했지만 기름값 자체가 내려가서 큰 차이도 아니었다. 결국 결론은 우리가 식비를 너무 많이 쓴다로 나버렸다.
또 우린 자료를 모아보고자 또래 2인가구에게 생활비를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물어볼만한 사람이 많지도 않고, 정확한 금액을 물어보기 좀 그래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모을 수는 없었다. 다만 대략적으로 말한 금액들이 대부분 우리가 쓰는 금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어봤던 커플 전부 우리보단 적게 쓰는 편이었다. 특히 식비에 있어서는 모두 우리의 한달 식대를 듣더니 놀라워했다. 우리보다 식비를 현저히 적게 쓰는 커플들은 전부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대충 먹을 때가 많다고 했다.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의지와 관심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식비를 줄이려면 먹는 음식의 질이나 횟수를 줄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장을 봐서 먹고싶은 것을 만들어 먹으면 외식하는 비용보다 결코 적게 쓰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먹고 싶지 않은 것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면 어른이 되어 독립된 삶을 사는 의미가 없잖아? 난 정말이지 내가 먹기 싫은 것을 먹을 때가 가장 불행하단 말이다. 나는 게다가 지금도 완전히 만족스러운 식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가능만 하다면 재료의 원산지나 농법, 가공법 등에 더 까다롭고 싶고, 조리를 위한 도구도 더 좋은 것으로 갖추고 싶다. 외식도 지금은 진짜 가보고 싶은 곳의 10%도 채 가보지 못하고 있는데, 여건만 되면 전부 가보고 싶고, 새로운 곳을 더 발굴하기 위한 노력도 해보고 싶다. 나는 그다지 대식가나 미식가, 또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누구도 알아줄 필요 없는 소소한 Foodie로 살고 싶은 것이다.
돈계산을 하다보니 내 정체성을 들여다 보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