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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오전의 나

3년간의 회사생활이 나에게 준 선물은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게 된 능력이다.

아직도 아침잠이 너무 많아서 쉬운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일어는 날 수 있게 되었다. -_-;

밤새워 과제를 제출한 다음날인 어제를 제외하고는 출근하는 면조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밥도 지어야 하고, 바닥 청소에 그간 소홀히 한 집안일을 하다보면 일주일째 오전이 금방 가버리더라.

내가 집에 있으니 집도 깨끗해지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노릉사는 집이 아닌 사람사는 집 같다며 기뻐하는 면조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잘 해줄 수 있는 것도 이번주가 마지막이다. ㅋㅋㅋ

물론 다녀와서는 더 잘해줘야겠지만, 안하던 살림을 하려니 잘 안된다.

잘 기억조차 나지 않을만큼 오래전에 어떤 스님이었나, 깨끗하고 정돈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수행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있는데 이건 정말이다. 살림 잘하는 아주머니들을 왜 도사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아.

아무튼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싶었던 집안일을 실컷해도 점심먹을 시간밖에 안된다.

점심 해서 먹고 난 이후는 내시간이다.

그제까진 머리 붙들고 과제를 했고, 어제는 옷장의 여름옷을 정리해 집어넣고, 겨울옷을 꺼내 걸어놨다. 캐나다 갈 짐도 좀 쌌다.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녔고, 맛있는 빵이 갓 구워져 나오는 시간에 맞춰 빵집에 가 빵도 샀다.

오늘은 미용실가서 오래 미뤄왔던 뿌리염색도 하고 약속시간 전에 시간이 되면 미술관도 다녀와 볼까 하는데 컨디션 봐서 결정해야지.

시간이 남아서, '이젠 뭘 할까?'하는 생각을 아주아주 오랜만에 해본다.

그동안 항상 시간에, 구글캘린더에 적힌 일정에 쫓겨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왔다.

생산성 있는 시간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시간을 보낼 재미난 일을 계획하는 능력이 많이 둔화되었다. 이젠 누구를 기다리거나 시간이 남아있을 때 고작 하는게 스마트폰으로 SNS타임라인 훑어보는거다. 해야 할 일과 공부는 폭발적인 집중력으로 단시간에 끝내고, 길고 긴 자유시간을 뭐하고 놀지 계획할 수 있는 짧은 시기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아니 사실 내가 돈주고 샀다. 아깝지 않게 보내고, 그동안 나의 고향 서울과도 많이 친해져야지.

하지만 다음주엔 제2의 고향같은 토론토에 있겠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대학에서 만나 결혼하기까지 최장 3일이상 떨어져 있어 본 적 없는 면조를 한달이나 독거노인으로 살게 해야 하다니… 나만 즐거우면 안될 것 같은 묘한 죄책감에 괜히 거기서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계획하게 된다.

마치 29살, 겨울과 가을의 경게에서 캐나다 안갔으면 큰일날뻔한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와야 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신의 가호를 받는 내 삶이 그동안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