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시벨리우스

난 화가나면 시벨리우스를 듣고 싶어진다.

사실은 더티 사우스의 깽스터랩 같은걸 듣으며 뚬치뚬치도 하고 따라부르고도 싶은데

그러고나면 화가 더 더 더 나서 몸이 아파오는 경지에 이르기 때문에 참는다.

시벨리우스가 왜 듣고싶냐하면 아마 이름의 발음이 거세서ㅋㅋㅋ 도 있겠고

교향곡 2번의 우루루루루우루루루우루루루우루루루 하는 바람소리 같은 리듬 앞에 흐르는 멜로디가

처참하면서도 비장한 전사의 다짐같아서 듣고싶은 것 같다.

좀전에 틀었다.

좋다.


왜 화가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도 효과가 있다.

클래식을 들으면 그런 생각으로 좀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시뷀리우스가 듣고싶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시나리오 강의를 들었는데 선생님은 일기의 딜레마때문에 일기를 안쓴다고 하셨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이 일기인데, 도무지 내가 살아있을 때, 혹은 죽어서 누군가 볼 까바 두렵다고 하셨다.

유치한 자신을 들키는 것 같아서 창피하기도 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완성된 문장으로 쓸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라 하셨다.

아무튼 안쓴다고 하셨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아마 기억하기론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온라인에 일기를 쓰고 있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댓글도 달 수 있다.

5학년때는 11살이었으므로 게시판같은건 못만들고 html로 하나 하나 제작해서 내홈페이지에 일기를 올렸다.

지금은 내 홈페이지란게 없다.mingsss.net을 치면 비슷한게 뜨긴 하지만 5학년 때 만든 그것보다 형편없다.


아무튼 나는 일기를 쓴다.

생각을 미친듯이 깊게 깊게 깊게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려오면,

아니 정말로 편두통이 시작되면

일기를 쓴다.


내 일기는 배설이기도 하고 결론이기도 하다.

때론 결론따위 없는 횡설수설이 되기도 하는데, 굳이 정리하려 하지 않고 횡설수설로 마무리 짓는 것이 내 결론이다.

신기하게도 일기를 쓰고나면 더이상 그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온라인에 써 와버릇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발행, 혹은 공개를 하고 나면 그 걱정거리가 내 것이 아닌

만인의 것으로 책임이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가 읽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이 내 답답함을 느끼고 잠시나마 해결책을 고민해 볼 것이란 기분이 든다.

그러면 나는 더이상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함께 다음 고민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고 하는데

나는 걱정을 사서 하고, 그 것을 어떤방식으로든 일기장에 결론짓는 것이 꽤 재미있다.

사는 보람이다.

누군가 내 일기를 보고 나를 유치하다고 여기고, 부끄러운줄 알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지만 남의 일기를 훔쳐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은 얼마나 예의바르고 떳떳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은근히 자신감이 차오른다.


내가 왜 화가났는지로 돌아가자.

세상의 모든 문제중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나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내가 해결할 수는 있지만 여건이 안되어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무척 많다.

또 지금 당장은 해결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마 내 생각보다도 훨씬 많을 거다.

나는 게으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대체로 무시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일에 좀 더 집중을 하기 위함이라고는 변명하고 있지만 사실 귀찮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재미없음을 무릅쓰나 싶다.

그래도 일정 기간안에 (내 경우는 1주에서 2주) 이 문제들이 적절히 배합되어 내 인생에 나타나서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착 리스트업해서 해결해 나가면서 조금 노력을 기울여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것도 무사히 해결되어 마무리된다면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참으로 좋다.

그런데 지난 2주간 나에게 벌어진 일들은 대부분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여건이 애매해서 자꾸만 늦춰지고 지연되어 답답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앞으로의 시간이 캄캄한 것들이다.

문제는 그 여건이라는 것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타인의 사정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지금 힘든 것은 내 탓도 아니오, (다 이유가 있었을테니니) 타인 탓도 아닌 것이다.

이건마치 악역없는 영화에서 주인공만 혼자 삽질하다 망해버리는 케이스로 아주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어찌나 폭력적인지...! 

그들은 대부분은 무척 똑똑하지만서도 '재촉'이 폭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위협적인 폭력이다.

나는 나의 템포가 있고, 약속된 일정안에서 내 템포대로 시간을 분배해 일을 처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재촉은 내 권리를 완전히 말살하고, 그들이 돈을 주고 산 것이 나와 나의 시간 모두라는 착각을 진리처럼 믿고 내 인격을 매우 모독하는 짓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노예가 따로 없다.

솔직히 능력이 달리는 나 자신보다 그들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 더 화가난다.

재촉의 방식은 어찌나들 한결같은지.

'언제까지 됩니까' 이다.

이것은 질문이기도 하고 당장 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어릴 때 공부하려고 앉았는데 엄마가 빨리 공부하라고 하면 울컥 화가 솟구치며 책을 덮어버리게 만들던 그런 상황을 떠올려 보라. 유치해보이지만 주최인 나는 매우 심각하고, 어지간해서는 마음이 복귀가 안된다.

아마 앞으로도 이 청개구리 성향은 고치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의 재촉을 부른 것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하도 이곳 저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유연하게 그들을 안심시킬 멘트를 준비할 뇌의 여유가 없고, 화가 치미는 자신을 달래가며 일하면 아무래도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도 알고있다.

하루, 혹은 이틀정도 희생해서 평소보다 배나 많은 일을 해버리면 된다.

그럼 밀린 일처리가 없어 마음에 안정을 찾을 것이고, 

실제로 시간도 생겨서 차를 마신다든지 여유부릴 수 있게된다.

나는 아무래도 오늘밤부터 그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하기싫어 죽겠는 마음을 매듭지어보고자 일기를 쓰고 있다.


아무튼 시벨리우스는 대단하다.

지금은 바이올린 협주곡이 크게 크게 흐르고 있다.

휘몰아치고 휘돌아치는 휘몰이장단의 클래식

적절한 욕설을 가사로 붙여 따라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