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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믿음 소망 사랑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랬는데 예전엔 그 말을 별로 안믿었던게, "사랑"이라는 단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너무 큰 의미라서 오히려 내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기에, 게다가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과 심지어 신의 사랑까지도 포함하니까
"그중의 제일" 이라는 비교형의 한 종류로 보기에는 너무 거대한 개념 같았다.
그래서 한 때는 닉네임이 "사랑을 비웃는자"라는 시건방진 것을 쓰기도 했었는데
결혼을 앞둔 날 보고 문정이가 저거가지고 놀렸어...
중2때 닉네임 가지고 놀리는건 반칙인데!!!

요즘에는 하루 하루가 너무 특별한데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여기저기서 사랑받는 기분이 들고 또 그러다보니 진심으로 애정이 가는 많은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런 느낌을 특히 많이 받는 여러 사건이 있었다.

아침 8시에 눈을 떠서, 내 생일 기념으로 아빠가 예매해준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을 먹고
아빠랑 지하철타고 CGV에 가서 면조를 만나 셋이서 '범죄와의 전쟁'을 봤다.
윤종빈 감독의 작품은 처음 봤는데 왜들 그렇게 칭찬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좋게 봤다.
특히 당시의 부산남자들의 로망과도 같아 보였던 배를 타고 씽씽 달리는 하정우와 취민식의 장발, 줄무늬 샤쓰가 너무 웃겼다.
영화보기를 너무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정말 호사스런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영화 보는 것은 정말 아무나 다 하는 것인데 뭐가 호사스럽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가 시간을 보낼 때 영화를 본다고 하면 언제나 설레는 마음이 들고, 영화 편식도 별로 안하고,
어쩌다 좋은 영활 보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떠올릴 때마다 흐뭇해지는 기분을 느끼는데 어찌 호사스럽지 않은가!
새로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를 트렌드에 쫓겨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이다.

또 성당에 가서 혼배면담을 위한 서류를 접수했다.
왠지 결혼식에 대한 절차를 하나 하나 함께 처리할 때마다 엄청 뿌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조사부와의 점심약속을 위해 연신내의 조사부 작업실로 가서 면조와 점심을 얻어먹었다.
화가이신 조사부껜 여러번 밥을 얻어먹어서 좀 죄송했지만 오늘은 면조도 데려가서 얻어먹어버렸다. (...)
곧 신혼부부가 될 우리를 위해 정말 폭발적으로 좋은 말씀을 쏟아내 주셨다.
한마디 한마디 너무 편안하게 와 닿으면서 큰 용기를 주는 좋은 말씀들.
우리가 서로에게 천군만마가 되는 것 같은 멋진 화합이라고 축복해주셨다.
게다가 최근에 면조와 내가 많이 고민하고 있는 '인생을 사는 법'에 대한 선배로서의 솔직한 조언도 주시고...
우릴 위해 누군가가 이렇게 정성껏 조언해 준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다.
밥먹고 좋은 녹차를 마시며 오랜시간 이야기하고 나오는 동안 내가 매우 부자가 된 것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나서 연신내에 있는 연서시장인가에 잠시 쓸려들어갔는데, 먹자골목이 있었다!
잔치국수랑 김밥을 와구와구 저녁으로 먹고,
자주가는 동네 카페, '홍제동'으로 향했다. 요새 엄청 자주간다.
너무 마음에 드는 공간인데 6월부턴 자주 못올테니까 ㅠ0 ㅠ 더 열심히 가게 된다.
완전 좋은 주인아저씨가 추천해주신 일본만화 '소라닌'이란 만화책을 봤다.
마음이 답답해지고 찌릿해지면서도 너무 공감되고 내 미래가 걱정도 안심도 동시에 되는(?!)
정말 사람마음을 복잡미묘하게 만드는 만화였다.
주인아저씨와 초콜렛만드는 언니가 곧 결혼하신다고 한다!! 깜짝놀랬다.
우리가 예전에 막 싸우고 대화하고 하는거 들으셨는지 ㅋㅋ 우리도 결혼하는 것을 알고 계신다.
카페 홍제동은 처음 갔을 때부터 왠지 주인아저씨 포스나 선곡, 말투 등에서 '앗... 어쩐지 통한다'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나 음악이나 가게 안에 비치된 만화책이나 책 같은 것들이 전부 취향에 맞는다.
신혼여행은 몰디브로 가신단다. 아일랜드로 간다는 우리를 엄청나게 부러워 하셨는데 난 몰디브도 좀 부럽다. ㅋㅋ
아무튼 여행은 좋은거다. 일산 호수공원으로 가더라도 여행은 좋은거다.
그리고 여행은 가고 싶었던 곳엘 가야 한다.
깡패에게 명분이 필요하듯 여행자에게도 명분이 필요하다.

아무튼 소라닌 때문에 싱숭생숭해져서 긴 일기를 써야지 결심했다.
내일은 월요일이라 우울하다.
나도 이젠 일요일밤에 우울한 직장인이라 생각하니 더 우울하다.
회사의 팀장님을 보면 주말이고 밤낮이고 할 거 없이 늘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시는데
난 일 할 시간이 끝나면 일의 반대편 파트인 내 인생에 충실하고 싶어서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지낸다.
내 입장에서는 참 좋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안좋겠지.
근데 회사가 날 좋아해줬으면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ㅠㅠ
그냥 회사도 면조처럼 날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면 안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참, 생일 전날에는 친구들이 소중한 금요일밤에 회사 끝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서 내 생일을 축하해줬다.
이 모든 것을 면조가 2주전부터 기획했다고 한다. ㅠㅠ
진짜 이 사람들!! 왜이렇게들 마음이 착한거냐. 완전 감동했다. 막 들떠서 술도 많이 마시고 떠들었다.
막 친구들이 선물도 챙겨줬는데 하나같이 꼭 필요했거나, 의외인데 엄청 멋지거나, 진짜 다 본인들스러운거라 너무 웃긴 것들 ㅋㅋ
면조의 오랜친구인 정식오빠는 면조가 부탁해서 공연준비까지!!! 해줘서 둘이 카페에서 노래를 불러줬다!
조규찬의 Thank you, 해피버스데이(편곡 by 면조 ㅋㅋ)
말도 안돼 내인생에 이런 이벤트가..............이건 말도 안돼
친구를 위해 먼 곳까지 여자애들밖에 없을 뻘쭘한 파티에 참석해주고 멋진 공연해주고 쓸쓸히 돌아간 ㅠㅠ
정식오빠의 사랑과 우정(?)에도 감동했고 미안했다.
난 잘 까먹는 사람이라 이런 감동적인 것도 까먹을지도 모르니까 실제 감동을 전혀 표현하지 못할 망정 짧막한 글로 기록해 둔다.

아놔.
잘살아야지.
젊을 때 이렇게 복을 잔뜩 받으면 늙어서 박복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서 더 착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