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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디자인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것. 일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

영화를 배우는 학교는 필름스쿨이라고 따로 명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다닌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의 커뮤니케이션디자인전공 또한 독특하기는 이를 데 없다.
디자인학교라고 뭉뚱그려 말해도 혼내지 말아주세요. (뒷담화는 오케이)

디자인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것은
'멋진 레이아웃 디자인하기' step 1 to 10 같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의외로 굉장히 추상적이고 뿌연 것들이 많다.
물론 어도브툴이나 기타 수작업 등의 스킬을 배우기도 한다만,
대놓고 수업을 하기보다는 과제를 통해 스스로 배워야 하는 느낌.
대신 전시회 보고 와서 감상문을 쓰거나,
디자인 이론, 저명한 작품들에 대해 분석을 한다거나,
디자인은 과연 무엇이고, 도대체 뭘 뜻하는 것이며, 어찌해야 잘 할 수 있는지를 죽어라 고민한다거나,
영화, 음악, 미술, 미디어아트 작품 등을 감상하여 문화적 소양 및 안목의 성장을 꽤한다거나,
구체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그 내용이 되는 것들,
가령 앞서말한 영화, 음악, 미술, 미디어아트, 문학, 이론, 사상, 과학, 정치, 사회이슈 등등등!에 대해서 공부한다거나,
한주동안 열심히 한 과제물을 그럴싸하게 프리젠테이션 하는 연습을 한다거나 한다.
즉 대단히 이것 저것 다 한다.

졸업을 하고 더이상 누군가가 나서서 나를 가르쳐주지 않는 지금,
스스로 뒷걸음질 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나로써 관심있는 것은,
여전히 내 '안목'을 좀 더 아름답고, 때와 장소에 적절한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데에 있다.
내 나이 아직 이십대 초반을 갓 벗어난지라 경험도 부족하고, 생각도 비교적 짧고,
본 것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적을지 모르겠으나
그림그리고, 사진찍고, 이미지를 그럴싸하게 다듬는 재주를 타고 났다고 믿고,
잘 다듬어진 텍스트를 이미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법도 배웠다고 믿고,
나보다 덜 '안목'에 자신있는 사람에게 미적 혹은 디자인적 자문을 주는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
스스로 낯부끄럽지 않도록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보고 느끼려고 노력한달까.

확실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문화, 예술 등의 활동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
뭐가 좋아보이고, 왜 그런지, 뭐가 나빠보이고, 왜 그런지,
어느정도 내 의견을 적절히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런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들(주로 내가 만나는 고용주들)과 이런 종류의 대화를 하면
그 차이점이 확연히 들어난다.
자기 나름 고매한 관점과 취향이 있고, 내가 가진 돈만큼 안목도 성장했다고 믿는 사람들일지라도
옆에서 누군가가 '그게 이뻐요? 내가보기엔 완전 촌스러운데...'라고 하면 그 즉시 꼬리를 내린다.
그런가? 내 취향이 좀 촌스러운가? 하는 불안한 얼굴로 서둘러 변명을 하기도 한다.
이 것은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대게 이런 사람들은 통계 없이는 아무 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졸업 후 본의아니게 프리랜서로 살다보니 이것 저것 다양한 일들을 하고,
다양한 고용주및 마케팅쪽 담당자와 함께 작업을 해왔는데,
아무래도 이 즈음에서 드는 생각은
'이건 그냥 일이다.' 라는 것.
의욕을 샘솟게 하는 훌륭한 클라이언트와 적극적으로 열심히 작업해서 좋은 결과물을 내놓으면 최고이지만,
늘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고, 약속한 만큼 일을 열심히 해서 계약을 무사히 완료시키면 된다. 라는 것이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 돈버는 재미를 얻고,
쉬는시간엔 내가 좋아하는 다른 일을 즐겁게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
심플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