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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내 상상력은 어디로 갔을까?

아빠는 한낱 공상이라고 했지만,
예전엔 꽤나 엉뚱한 생각과 말을 많이했었다.

보통 "만약...라면..."으로 시작되는 상황에서 특별한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하기도 했다.
아니면 단순히 모든 것의 원인을 내 멋대로 만들어서 그 결과가 웃음거리가 되게 되는 것이 즐거웠다.
때로는 온갖 것에 온갖 것을 대입하기도 했다.

현재는
잘 모르겠다.

작업을 할 때도,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할 때도,
이치에 맞는지 먼저 생각하고, 논리적인지, 다른 사람들도 동의할지를 따진다.
재미있는 상상에 마음 한켠이 촉촉해지는 기분을 느낀지 아주 오래 되었다.

그렇게 된 시기와 내 상황을 힌트로 삼아 원인을 추리해보면
역시 대학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은 것이 문제일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교육 자체가 문제인지 받아들이는 내가 어리석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즐겁게 수업을 들었고, 최대한 수업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보고 행해 보려고 애썼다.
언제나 백프로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하나도 관심없게 보지 않았다는 데에는 꽤 자신이 생긴다.
사실 교양도 포함에서 대학 수업이 굉장히 다양하고, 과제에 투자해야 할 시간이 너무 많았기에
시키는 것 외에는 딱히 골똘히 머리를 굴리지도 않았고, 지난 3년간 '창작의 고통'은 비교적 적게 겪었다.
물론 디자인 작업이 창작이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이치에 맞는 작업을 공감할 수 있게 그려내면 되니까 쉬운 편이었다.
사진을 찍거나,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게 쉽고도 또 어려웠다.

나는
상상력보다는 기술을 쓰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니 그렇지 않나 추측해본다.

어떻게든 보기 좋은 것을 만들려고 하고, 보기 좋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보기 좋은 것들을 토대로 분석하고 학습한다.
이 것은 기술인거지?
내가 만들 수 있는 보기 좋은 무언가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냐에 대해서는
대부분 컨셉을 잡는 시작과정에서 고민하긴 하지만,
철저히 다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배려라는 차원에서 내 상상력을 쥐어짜내는 것은 포기한다.

짐자무쉬의 영화나,
집에오는 지하철에서 재미있게 읽은 1Q84를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몸의 근육을 적당히 써줘야만 에너지가 넘치고 건강해지듯이
남 설득시키는 머리만 굴리지말고 상상력근육도 좀 써줘야 뻣뻣해지지 않는다.

내가 하고싶은 말이 없으면,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