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다들 첫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나는 딱히 누가 '첫'인지 모르겠다.
물론 가장 처음 이성에 대해 호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약간의 기간동안 품었던 기억을 가지고는 있다.

1Q84의 아오마메와 덴고는 대략 10살 전후에 첫사랑을 느끼고 손을 꽉 잡는데,
책을 읽을 때는 첫사랑이란 단어를 붙이기에 10살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나도 그 나이 즈음에 가장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했었구나. 라고 깨달았다.
정말 오랫동안 잊고살았다.

-

아무튼 그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고, 다른 행동을 보였다.

당시에는 남여가 사귄다거나 하는 개념이 없었지만 나름 즐길거리는 있었다.
같은 연립빌라에 사는 그가 귀가하는 시간즈음에는 늘 내가 가진 가장 예쁜옷을 입고 은근하게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지나가면 시큰둥한 척 인사를 하고, 어쩌다 내 옷을 칭찬해주면 언제 시큰둥했냐는 듯 기뻐했다. ㅎㅎㅎ
그 사람은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었고, 나는 엄마나 아빠한테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냐고 질문했고,
어쩌다 대화의 화제가 그 사람이나 그 집이 될경우 귀를 쫑긋 세우고 관심있게 들었다.
집안에 어려운일이 있는데도 평판이 너무 좋은 사람이었고, 얼굴도 내 기억에는 아주 잘생겼었다.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한테 너무 좋다고 여러번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 사람은 이사를 가고,
몇년간 전혀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간 해였다.
중학교는 머리를 기를 수 없어서 아주 미운 단발머리로 자르고 난 후 만사에 더 시큰둥해졌다.
학교가 너무 먼데 차편이 마땅치 않아서 먼 거리를 걸어다니다 보니 집 가까이 오면 힘이 다 빠져있었다.
슬슬 더워질 무렵 집 가까이에 있는 언덕을 오르는 계단에서 그 사람을 마주쳤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알아봤지만 머리도 못생기고 힘이 하나도 없어서
굳이 불러서 인사를 하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봤는지 약간 놀란듯한 표정이 되더니 씩 웃고 다시 가던 길을 가더라.
무지하게 반가웠다.
이게 끝.

글쎄 뭐 이런 어린이 시절의 추억을 놓고 '첫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좀 어색한 기분이 든다.
남자들이 평생 못잊는다는 그 '첫사랑'이랑은 본질이 달라보인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올법한 순수함이지만 이렇다 할 클라이막스도 엔딩도 없는 이야기.

-

생각해보면 저 정도의 관심을 가졌던 남자는 그 후로도 꽤 많았다.
그들을 일일히 번호를 매겨가며 첫사랑, 두번째 사랑, 세번째 사랑이라고 칭하기엔 좀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어느 누구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기억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중에 단 한명이라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사귀었던 사람만이 '첫사랑'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어거지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 개인담의 정렬을 위해 어거지를 부릴 필요는 없다.

아무튼 애매하다.
나에겐 사랑이란게 뭔지도 애매하기 떄문에 첫사랑이 뭔지가 애매한가보다.
저 유년시절의 기억을 첫사랑이라 부른적은 한번도 없다.
분명 아주 어리고, 행동의 범위가 너무 좁고, 
그 사람과에 대해 알거나 관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전혀 결정하지 못했던 때의 나지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여튼 누구와 어느정도 친해지면 첫사랑 그리고 가장 최근의 사랑이 궁금할 적이 있다.
물어보면 의외로 '첫사랑'에 대해선 시원시원하게들 답해준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첫사랑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고있다는 것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