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는데 불을 켜니까 비스듬히 열린 창문 위편에 거대한 여치인지 메뚜기인지 모르겠는 곤충이 벽에 붙어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비명이 절로 나오고 당장 어떻게든 창밖으로 내보내려고 난리를 쳤을 거다. 정원이 딸린 집에 살다 보니 이제 온갖 곤충에 무덤덤해졌다. 무덤덤해진 것을 넘어서 아예 '저 아이는 생태계에서 무슨 역할을 할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내 눈에는 해충이었던 곤충들이 사실 대부분 생태계에서 역할이 있다는 것을 하나 둘 발견하며 무지해서 악했던 내가 조금 기특해졌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내가 극혐 하는 파리조차도 죽은 동식물을 분해해서 분자로 땅에 흡수하게 하는데 역할을 한다. 아직 모기새끼들의 역할은 모르겠다. 개체수 조절? 모르겠고 소리가 들리는 족족 잡아 죽이고 있다. 여하튼 파리와 모기 외의 곤충은 최대한 안 죽이고 내보내려고 한다. 거미는 이제 그냥 한 달 정도는 내버려두고 같이 사는 편이다. 가끔 무료 세스코 역할도 해주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지구상에 생명을 가진 것들은 대충 존재로서 하는 역할이 있다.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태어나서 그 작은 역할을 하다가 노쇠해서 죽고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지구 자원 맘대로 써서 다른 생물들 방해하기? ㅎ 모처럼 이렇게 많은 기능을 가진 생명체이니 그래도 주어진 역할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늘 내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하자품인 것 같다는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무한경쟁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서 그런 것일까? 살다 보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별 다른 기능을 하지 않고 태평하게 살다 가는 인생도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사회상에 따라 인종이나 성별, 출신에 따라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삶을 부여받는 럭키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사실은 알고 보면 나도 그런 편이었으면 좋겠다. 지금껏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는 과정에서 인간 종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대충 마쳤고, 번식을 포기함으로써 가열되는 지구 환경에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 주는 것으로 마지막 덕을 마무리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다면 좋겠다. 아니면 아예 남은 과제 리스트가 뭔지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스스로 매일 밤 고민하는 것이 지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불이 타고 있는 한 고민을 멈추지는 못하겠지. 설마 인간에게 주어진 종으로서의 과제가 고민 그 자체이려나?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해 하릴없는 관심을 가지고 한정된 정보로만 접하는 남의 삶과 나의 삶을 한편씩 떼어다 비교하며 쓸 데 없이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내가 인간이기 때문일까? 오늘 보던 일본 드라마 '혼자 죽고 싶어'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나와서 나와 겹쳐 보였다.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남과 나를 비교하며 느끼는 감정은 사실 뿌리는 같을 것이다. 내게 미치는 영향도 똑같이 나쁠 것이고. 내 삶과 내가 기꺼이 책임감 가지기로 결정한 것들에 대해서만 정성을 다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의 부작용 같기도 한 번뇌를 잘 모른척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