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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걱정을 잔뜩 안고 살아가기

빛나는 노르망디. 오래전에 찍은 사진.

 

요즘 삶에 걱정이 너무 많다.

 

가장 큰 걱정이었던 노르망디의 건강은 그래도 일단 안심할 수 있는 검사결과로 한시름 놨다. 노릉이가 작년 가을에 비강 림포마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게 11월, 5월에 다시 씨티를 찍어서 원래 종양이 있던 코 부분은 완전 관해가 되었음을 확인했으나 폐의 림프 쪽에 불투명한 것이 보여서 3-5개월 후 다시 씨티를 찍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노릉이가 8월에 기침을 많이 해서 폐림프에 혹시 전이가 된 건 아닌가 불안해져서 3개월 만에 다시 씨티를 찍었다. 이번에는 폐에서는 눈에 띄는 것이 보이지 않았고(염증이었으므로 추정), 대신 코에 치료받은 곳에 작은 혹이 보여서 내시경으로 떼서 조직검사에 들어갔다. 수의사선생님 말로는 종양으로 보기에는 사이즈나 주변부 염증성콧물이 잔뜩 보이는 것으로 보아 굉장히 애매하지만, 기존 종양이 있던 부위고 만에 하나 재발한 것일 수 있으니 조직검사를 하는 편이 좋다고 하셨다. 경험상 같은 곳에 재발하는 경우가 많냐고 물었더니 분명히 있는 경우라고 하셨다. 그럴 경우 다시 방사선 치료를 하냐고 물어보니(매 번 마취를 해야 하고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마음과 통장의 준비를 위해) 만약 9개월 만에 재발한 것이면 방사선 치료가 노릉이랑 잘 맞다고 볼 수 없으니 항암 화학치료를 권장한다고 하셨다. 뭐가 되었든 나는 이 시점에 이미 항암 치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통장의 준비만 하면 되겠다 생각했으니까. 사실은 노릉의 암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이미 굉장히 많은 돈을 쓴 것도 있고, 최근에 개인사업에 투자를 더 하면서 통장 잔고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이라 마음의 여유가 전처럼 없었다. 원래 1주일 정도 걸린다고 한 조직검사 결과는 열흘이 지나서야 나왔다. 다행히도 종양도 악성도 아닌 염증으로 판명이 났다고 하셨다. 1주일보다 더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혹시 종양세포가 빨리 자라지 않나?(=악성이 아닐 가능성 높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약간 희망이 생기긴 했었다. 너무 다행이다. 항암제 대신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받아서 염증 치료를 다시 집중해서 하자고 하셨다. 지난 9개월 동안에도 쭉 콧물과 젤리 같은 눈곱이 있었는데 이 것을 치료해서 만성이 되지 않게 함이 목표인 듯하다. 타이밍도 걱정이었다. 노릉이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주기적으로 1시간 넘게 걸리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병원에 다녀오면 늘 2-3일 컨디션이 안 좋은 노릉을 가까이서 돌봐야 한다. 그런데 9월 중순에 2박 3일 출장 일정이 있어서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항생제와 소염제 치료는 2주 정도 할 예정이기 때문에 다행히 출장일정에 집을 비워도 큰 지장은 없을 듯하다.

 

두 번째 큰 걱정은 역시 돈이다. 사업 확장을 위해 우리가 그동안 모은 저금을 다 쏟아 넣어, 창고에 설비를 만들고, 전동 포크 운반기를 사고, 화물차를 구입했다. 그러다 보니 통장 잔고가 정말 충격적으로 줄었다. 아직 위기상황이 닥친 것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대처할 현금 유동성이 없다. 가령 타고 있는 자동차를 수리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말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조금씩 저축해 나가면 되긴 하지만 오랫동안 모아 온 돈이니까 오래 걸릴 것이다. 어느 정도 비상금이 다시 모일 때까지 이 걱정은 계속될 것이다.

 

세 번째 걱정은 사업이다. 리스크를 지고 투자를 진행해 둔 상태여서 이제 결과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때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시장 상황이 우릴 도와줄까,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잘 될 경우 원재료 수급은 어찌하나, 지구 온난화 때문에 유자 생산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데 제발 기후위기가 더 이상 가속되지 않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도 없는 걱정거리와 불확실성이 가시적인 장애물로 눈앞에 서 있다. 다 알면서도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은 나다. 과거의 나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나다. 고되다.

 

네 번째 걱정은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이다. 특히 디자인 직군인 나는 나를 제외한 모든 디자이너가 갈아치워 지는 것을 지난 몇 년간 봐왔다. 비싼 서유럽/북미 인력 대신 생활임금이 싼 국가의 인력으로 바꿔 치는 것이다. 어제는 함께 손발 맞춰 잘 일하고 있던 우리 개발팀도 절반은 탑다운 결정에 의해 정해진 다른 에이전시의 사람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_- 네포리즘과 실리콘밸리식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겠지만 소식을 알게 된다면 꼭 힘이 되고 싶다. 사실 이 것은 불안도 있지만 불만이 크다. 회사야 잘리게 되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고, 이 기회에 독일어도 배우고 다른 분야 일도 해볼 시간적 여유가 주어질 것이다. 비상금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나면 잘림에 대한 불안도 옅어질 것이다. 다만 이런 결정을 자기 멋대로 내리는 수천밀리언 연봉을 받는 쎄오의 멸망을 바랄 만큼 분노하게 된다.

 

독일에 와서 9년을 넘게 살면서 매년 적어도 한 번씩은 한국에 다녀왔었다. 딱히 용건이 없어도 그냥 가족들을 만나러 수백만 원과 유급휴가이 절반정도를 쓰면서 의무처럼 다녀왔다. 올해는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없어서 못 가는 첫 해다. 안정적이고 원만한 삶의 권태를 참을 수 없어 불만이 터지던 2-3년 전의 내가 부러울 만큼 나는 많은 일을 벌여놔 버렸다. 이상하게도 후회는 없다. 불안만 있다. 어차피 이 세상은 내가, 내 세대가, 나 같은 출신이 안정적인 삶을 쉽게 손에 넣도록 구성되고 돌아가지 않는다. 대학교 졸업 후 15년간 열심히 일을 하고 도전하고 돈을 벌어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디자인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지만 1 세계의 자본가들은 디자인 포지션에 큰 임금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 남을 위해 일하고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면 한계선이 너무나 명확하다. 그냥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호기심이나 채우자는 기분으로 벌려둔 일들을 기꺼이 처리해보고 싶다. 생각해 보면 이 정도 프로젝트가 내게 거저 주어진 적은 없었다. 스스로 만든 기회라는 자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