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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어린이 스케일, 어른 스케일, 휴먼 스케일

미남(요를)과 마시는 커피 한 잔

지난주에는 어린이날이 있었다. 어린이날 휴일과는 관계없는 독일에서 유난히 더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고, 야근도 많이 한 일주일을 보냈다. 어린이날이 지나면 바로 찾아오는 어버이날을 위해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그냥 습관대로, 그리고 아직까지는 가장 좋아하시는 방법인 계좌이체를 통해 마음을 전했다. 사랑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세요.

 

어릴 때는 왜이렇게 하늘을 많이 올려다봤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요가하면서 반쪽 상체를 비틀어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시선도 천장을 향하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귀로 듣고 나서다. 어지간해서는 천장과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사는 지금과 달리 어릴 때는 늘 고개를 쳐들고 다녔다. 어른들이 앞 좀 보고 다니라고 하는 핀잔을 매일매일 들었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덕분에 거북목 걱정은 안했던 것 같다? ㅋㅋ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린이가 꿈이 많고 공상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게 계속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봐야만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다 욕실 선반 위에 얹어둔 화분에 물을 주려고 까치발을 하고 꺼내다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키가 작아서였다.

 

이케아에 가서 쇼룸을 둘러보다가 어린이 방 코너가 나오면 묘하게 들뜨게 된다. 다른 코너에서는 색다른 패턴과 분위기의 디자인을 보고 즐거워지는 감각만이 있다면, 어린이 코너는 미묘하게 축소된 크기의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추가된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쓰는 대부분의 물건, 가구, 건물 등은 어른정도로 키가 큰 사람들을 기준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이 사이즈의 기준을 휴먼 스케일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키 165cm의 여성으로 살다 보면 내 키가 그 물건이나 구조물을 사용하기에 부족한 경우도 종종 겪는다.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는 까치발을 해야 해서 불편하다. 예전에 살던 집 주방 상부장은 가장 아랫칸 정도만 내가 사용할 수 있었다. 샤워기도 헤드를 고정하는 부분이 저렇게까지 높을 필요가 있나 싶은 곳에 달려있다. 자동차의 시트나 안전벨트, 에어백의 디자인도 175cm 이상의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교통사고에서 여성 탑승자의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국 현재 통용되고 있는 '휴먼 스케일'이란 말로는 일부의 사용자만 좋은 경험을 가지고 사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좀 더 세분화한 표현이 필요하다. 키가 작은 어른도 있고 키가 큰 어린이도 있기에 일기 제목에 쓴 것처럼 어린이 스케일, 어른 스케일로도 부르는 건 직관적이지 않다. 딱히 좋은 아이디어는 아직 없다.

 

아무튼 어릴 때는 냉동실에 뭔가 있나 보고 싶을 때도 까치발을 들고 시선을 키보다 높이 둬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표를 볼 때도, 쇼윈도우에 장식된 것들을 볼 때도,... 시선을 약간 높이 두면 자연스럽게 하늘도 나뭇잎의 푸르름도 눈에 같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낭만적으로만 여겨지고 있었는데 사실은 불편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많이 봤던 것은 내가 믿고 의지하는 어른의 얼굴이었겠지. 눈치를 많이 보는 어린이였으니까 표정을 살피려고 보았겠지만. 아무튼 좋은 어른이 됩시다. 그리고 키가 작은 사람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디자인이 가능한 시스템이 대부분의 산업의 스탠다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