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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Time is relative, indeed

내 주안상 사진. 소스 두개, 너겟 네개, 그리고 와인 한(+α) 잔

어른이 될수록 인내심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런데 겉보기에는 참을성이 더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 이유가 내가 살면서 경험을 통해 습득한 것 중에 때 와 때 사이의 간격, 즉 시간에 대한 감각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설명하는 내가 너무 부족해서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예를 드는 편이 낫겠다. 나는 세 살 때의 기억이 있다. 커다랗고 뭉툭한 모양의 티비 앞에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들뜬 분위기의 방송을 봤었다. 88 올림픽을 대표하던 노래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노래는 계속 계속 반복해서 나왔기 때문에 어린 나도 외울 수 있는 정도였다. 진짜로 가사를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노래 자체가 완전히 각인되어있다. 이때의 나는 자고 일어나면 마치 기억이 리셋되는 것처럼 짧은 순간만을 기억하며 지냈던 것 같다. 올림픽 주제가를 듣다가 잠이 들고 다음날 다시 들었다. 이때의 내가 감각하는 시간의 단위 중 가장 긴 길이는 하루 정도가 아니었을까.

 

반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루, 일주일, 한 달, 계절 또는 분기, 일 년, 오 년, 십 년, ... 여러 가지 단위가 있고 그것을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살고 있다. 지난주의 나를 떠올려 비교해 볼 수도 있고, 십 년 전의 나를 떠올려 오늘의 나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지지난 주의 나에 비해 이번 주의 나는 너무나 더디고, 무능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십 년 전의 나와 비교해 보면 제법 그럴싸하게 살고 있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삼십 대의 내가 이십 대의 나보다 덜 전전긍긍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십 년이란 단위의 시간을 더 살아봤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바뀔/안 바뀔 수 있는지를 이미 체험해 봤으니까.

 

이번 주는 연장된 주말을 쉬고서 휴식에 취해 깨지 못한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날씨가 구려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일하기가 정말 싫었다. 분명 재미있게 할 수도 있는 토픽인데도 짜증이 나고 왜 구지 내가 이걸 해야 하는지 울화가 차올랐다. 하지만 다 지나가는 감정일 것도 같아서 꾹꾹 누르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집에서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회사일로 만나는 동료들에겐 티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 저녁 먹고 나서 술 한잔 하면서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낙서장에 끄적대다가 시간의 단위에 대한 감각이 내 나이와 함께 커왔음을 깨닫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