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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어른이 되면, 자유롭게 꿈꾸는 것이 더이상 공짜가 아니야

성곽을 걷는 사노비 나

어른이 되어 참 좋은 것은, 내 생일을 디즈니랜드에서 보내는 것 정도의 결정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거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있었다. 이 것은 아마도 어른의 문제겠지. 다만 이미 파리행 기차와 호텔은 취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일단 파리에 가서 결정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예정대로 생일 전 주말에 파리로 떠났다. 여행객 모드가 되면 아무래도 근심 걱정을 덜 하게 된다. 그래서 그래, 날씨만 좋다면 디즈니랜드도 예정대로 가버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씨가 심각하게 안좋았다. 이런 지랄맞은 날씨속에서 여행을 해 본 것은 아마 몬트리올에서 길 잃어버린 후로 처음 같아. 정말 춥고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니 당연히도, 내 생일엔 줄곧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해가 났다!

 

생일을 챙겨서 축하하는 문화는 적어도 나에겐 없다. 친구들과 생일 즈음에 만나게 되면 같이 조각케이크를 사먹고 선물을 주고 받는 정도는 있어왔지만 '내 생일이니 꼭 다같이 축하해야 해' 이런 마음가짐은 절대로 가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 너무나 황송하게도, 올 해도 많은 분들께 생일 축하 인사를 받았다. 한마디 한마디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사람들 생일 챙겨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나? 돌이켜 보면서 반성도 했다. 요즘에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많은 곳에서 사람들의 생일 정보를 알 수 있다. 나는 그 것도 대충 못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따뜻한 인간이 되어야지 생각했고, 그러려면 일단 모두의 생일에 좀 안친하더라도 그들을 생각하며 축하 인사 정도는 전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다는 기분은 올 해가 처음인 것도 같다. 나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조차 딱히 챙겨오지 않고 있었다. 그냥 사고 싶으면 사고 싶을 때 또는 세일 할 때 사는 것이기 때문에. ㅋㅋㅋ 하지만 파리 여행중에 내 생일날에 맞춰 티켓을 사서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축하의 경험이었다. 한동안 손을 자주 씻으면서 생일축하 노래를 스스로에게 불러오고 있기는 했지만, 디즈니랜드 화장실에서 부르니 그 맛이 완전 매지컬한 것이다!

 

디즈니랜드를 내가 이렇게 감격스럽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엄마 덕분이다. 엄마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셔서도 있고, 엄마가 사준 시사영어사의 디즈니 비디오 시리즈 덕분이다. 자막도 더빙도 없이 쌩영어로만 플레이되던 그 테이프를 마르고 닳도록 집에서 돌려 봤었다. 전부 다 있는 것은 아녔고, 미키마우스랑 도날드덕 시리즈 몇 개 하고, 판타지아, 크리스마스 캐롤, 피터팬, 인어공주가 있었다. 전부 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프레임이 챠라라락 재생될 만큼 뇌리에 박혀 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본 것은 아무래도 인어공주 일 것이다. 음악이 너무 좋으니까. 15년 전에 도쿄의 디즈니씨에서 인어공주 쇼를 보고 막 눈물도 흘렸었다. 어린시절 사랑한 컨텐츠가 아직도 생명을 가지고 나와 같이 살고 있다니 너무나 기쁜 것이다.

 

사실 파리에서 디즈니랜드까지 가는 여정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기차 안엔 왜인지 찌린내가 진동을 했다. 꿈과 희망 어디있죠? 구대륙엔 없나요? 하지만 그 모든 불쾌한 기분은 디즈니랜드에 도착해서 채 파크에 입장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커다란 굿즈 상점이 입구에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행복해졌다. 아침이라 한산했고, 조용하고 나즈막히 울려 퍼지는 익숙한 음악이 기분을 단번에 희망찬 설렘으로 바꿔놓았다.

 

이번 시즌 파리 디즈니랜드의 주요 컨텐츠는 프로즌이었다! 사실 두번째 영화를 아직 안봤는데, 이미 노래를 알고 있어서 (인투디 언논~) 즐기는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난 원래부터 어트랙션 보다는 쇼관람이 너무 좋은데, 면조가 졸라서 탄 몇몇가지 어트랙션도 되게 재밌었다. 롤로코스터는 하도 오랜만에 탔더니 놀라웠어. 원래 이렇게 빠르고 정신없는 거였나? 하지만 되게 짧아서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놀이기구를 탄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롯데월드를 싫어하고 (실내라 시끄럽고 답답함) 서울랜드를 더 좋아했는데 서울랜드는 동물원을 돌아다니다가 진이 다 빠져서 아무 것도 못타기가 일쑤였다. 에버랜드는 가 봤는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디즈니 컨텐츠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이다.

 

중간에 잠깐 비가 왔지만 다행히 클로징 타임에는 날씨가 다시 개어서 멋진 일루미네이션 스펙타클 쇼를 볼 수 있었다. 매지컬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멋진 쇼였다. 면조가 자꾸 쇼 볼 때마다 훌쩍훌쩍 울어서 웃겼다. 디즈니랜드 첨 와보니 할 수 없지. 키키키. 쇼 시작 할 때 나레이션이 가슴을 흔들었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보이스 앤 걸스, ... 꿈과 마법의 나라 디즈니랜드의 일루미네이션 쇼가 시작합니다. 우리 어른이들은 이제 다 커버려서 마법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꿈을 꾸기 위해서는 특별한 인비테이션이 필요하죠! 자 시작합니다!! 뭐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다 커버려서 이제 내가 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다락방에 짱박혀서 하루종일 공상 하는 것을 하지도 못해. 그런 어른이 잠시 꿈을 꾸며 그 안에서 행복하려면, 돈을 써야했던 것이다. 여행객의 마음가짐으로 현재에만 집중하고 오늘만 사는 그런 느낌의 정신상태도 탑재해야 하고, 그걸 위해 어제부터 비축해 놓은 체력도 필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은 좋다. 어른이 아니었다면 디즈니랜드에서 뱅쇼를 마시며 추위를 피하는 것도 그림의 떡이 아니었겠어?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