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끝내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문득 주말에 집에 올 때마다 '아 우리집 너무 좋다, 우리집 너무 깨끗하다' 하면서 기뻐하는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과 같이 지내는 플랫메이트들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청소나 위생에 대한 개념이 놀라울 정도로 희미해서, 도대체 마지막으로 청소를 언제 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로 잘 살아가고 있다. 사실 나도 살면서 변하지 않았으면 그 정도는 아니(리라 믿고 싶다)었어도 현재의 나 같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나갔다가 들어오면 신발을 정리하고, 이틀에 한 번은 청소기를 돌리고, 베개나 이불 커버도 자주 세탁하고, 주방은 늘 먹자마자 설거지 및 뒷정리를 다 하고서 깔끔하게 유지하는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 학창시절의 나만해도 이와는 전혀 딴판인 인간이었다.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나는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과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부모님보다는 외할머니가 살림을 많이 하셨다. 물론 엄마도 요리나 살림에 참여하셨지만 내 느낌상 가장 책임감을 가지고 집안의 청결 등 환경적인 면을 관리하셨던건 할머니셨다. 한 평생 힘들게 일만하며 사신 할머니는 다섯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것을 불평하지는 않으셨지만, 늘 이곳 저곳 특히 허리가 많이 안좋으셨다. 당시의 나는 할머니가 좀 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냥 집안이 좀 더러워도 괜찮으니 청소는 몰아서 하면 되고, 할머니도 쉬엄쉬엄 하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참으로 그 때의 철없는 학생답게도 내가 청소나 빨래 등을 나서서 돕지는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 봤다. 왜 그랬을까?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었고, 다른 사람 말은 몰라도 할머니가 심부름을 시키거나 하시면 기쁘게 했다. 빨래를 게고 계시면 같이 앉아서 게기도 하고, 설거지는 종종 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청소나 빨래를 나서서 하지는 않았다. 빨래야 할머니가 선호하는 공식이나 방법을 몰라서 그랬다 치고, 청소는 사실 필요성을 전혀 못 느꼈던 것 같다. 내 눈엔 집이 늘 깨끗했고, 딱히 할머니가 '청소시간'을 정해놓고 청소만 하시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건지도 잘 몰랐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늘 하루종일 깨어 계시는 때에 어딘가를 닦거나 정리하고 계셨다. 나처럼 퇴근 후 30분 청소기 돌리기 같은 루틴은 따로 없으셨던 것 같다.
남편은 나보다 더 깔끔함을 중요시 여기는 부모님 아래에서 컸다. 본인이 스스로 집안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남편도 어린시절 엄마가 늘 어딘가를 청소하고 닦고 털고 계시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하숙방에서부터 혼자 살기를 시작하면서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해서는 꿈에 그리던 진정한 자취를 친구와 둘이서 시작했고, 청소상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친구에게 충격받았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남들에게 청소를 안하면 잔소리를 하는 병에 걸려서 나와 결혼후에 그 병세가 악화되었다. 나 역시 혼자서 산 경험이 있는지라 사실 나름대로의 청소스타일이 있는데, 정리도 청소도 몰아서 하기 때문에 더럽다고 할 수는 없어도 깔끔하다고 하기에도 좀 미묘한 편이었다. 물론 구역마다 신경쓰는 부분이 달라서 주방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그 누구보다 깔끔하게 관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거실이나 침실은 조금 더러워도 그냥 참고 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간이 날 때 뒤집어 엎어 치우는 편이다. 청소를 막 마친 방의 청결도를 100%라 치면 거기서 시간이 점차 흘러 20%까지 떨어질 때 시간을 내어 청소를 한다. 그런데 남편은 그 기준이 다르다. 70%만 되어도 청소를 하는 것 같다. 물론 청소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는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것 보다는 매일매일 조금씩 하는게 총 드는 시간은 더 걸리기는 한다. 지금은 하도 잔소리를 듣다보니 나도 남편처럼 하게 되었다. 사실 장점이 많다. 특히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고 부터 고양이들도 청소 상태에 따라 잔소리 레벨이 달라지기 때문에 -_- 둘이 살 때 보다 더 자주하게 되었다.
다시 예전의 할머니와 살 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할메가 생각하시는 청소상태 100%는 어떤 수준인지 상상도 잘 못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다섯 식구가 사는 집이다보니 그 100%의 상태를 본 적은 별로 없으실 것 같다. 다만 80%라도 유지하고자 하시는 마음에 늘 그렇게 어딘가를 쓸고 닦고 계셨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다만 내 눈에는 그 평균치 80%는 이미 충분히 깨끗하고, 사실 그 한참 아래인 40%정도만 되어도 살만하기 때문에 40%까지 떨어지기 전까지는 청소할 마음이 결코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 눈에 40%란건 정말 보고 있기 괴로운 일일 것이였을 테니까 내가 청소기를 들 틈을 주지 않으셨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현재 남편의 플랫메이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 눈에는 현재 상태도 충분히 깨끗한, 가령 60%정도의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공간을 우리가 보기엔 사람이 살기 힘든 0%이하의 느낌이다. 그래서 매주 남편이 최대한 집에 오려고 하고 있고, 나로썬 주말에 심심하지 않고 집안일 나눠 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다. ㅋㅋㅋ 그리고 남편은 본인의 잔소리가 없어도 둘이 살 때보다 더 잘 치우고 사는 나를 존중 하며 잔소리좀 그만 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