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남는 시간에는 늘 창작을 했었다.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썼다. 잘 그리고, 잘 쓰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동적으로 손이 움직였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필사적으로 그렸다. 나는 내가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지금은 그 때 상상한 내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요즈음엔 일기를 쓰는 정도가 내 안에서 표현되는 유일한 결과물이다. 최근에 오디오북을 처음 사봐서 그걸 들으며 뜨게질을 하기는 하는데, 뜨게질은 그냥 의식 없이도 할 수 있는거라서 운동에 가까운 것 같다. 남편이 요리에 푹 빠진 덕에 창작 요리를 할 기회도 좀씩 빼앗겼다. 물론 누군가 밥을 해주는건 좋지만, 가끔은 내 실험정신이 발현되는 요리를 할 때의 쾌감은 느껴본지 오래되었다.
그런 필사적인 창작을 하게 된 동기를 생각해보면 역시 온라인 동호회 였던 것 같다. 요즘 남동생이 인스타나 페이스북 계정에 그림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그림들을 계속 그리고 또 올리는 현상을 목격중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누군가가 새로운 그림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결국 나만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창작욕의 한계선은 분명히 있었고, 그게 내가 작가나 아티스트가 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연휴동안 트위터 사용을 좀 줄여보고자, 늘 가지고 다니는 장 볼 것 등을 적는 용도의 손바닥만한 수첩에다가 트위터에 쓰고 싶은 욕구가 드는 문장들을 적었다. 늘 소지하는 휴대폰 안에서 트위터 앱을 켜는 것은 너무 쉽기에 그걸 의식적으로 멈추려면 접근성이 그만큼 용이한 일종의 전시장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일기를 쓰면서도 느끼지만 나는 말하거나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든 사람이고,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는 수첩에 이런 저런 생각을 써 내려가는 편이 트위터보다 훨씬 현재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장점이 있었다. 일정관리나 테스크 관리도 보통은 앱으로 하는데, 그 곳에 적을 것들을 한번 노트에 적어보았다. 손을 직접 움직여서 이렇게 긴 글을 적어본 적이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판을 치는 것 보다 유기적인 감각이 기분 좋았다. 필기도 랩탑으로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펜과 노트에 뭔가를 적고(처음 든 생각: 도대체 뭘 적어야 한단 말인가), 틀린 것은 찍찍 긋기도 하고(그다음 든 생각: 백 스페이스와 Ctrl+Z가 없다니!), 줄과 여백에 관계 없이 그림을 그려 꾸며나가다 보니 140자 피드에 맞춰 트위터에 글을 적는 행위가 사실은 대단히 제한 된, 많은 가능성을 거세당한 형태의 창작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글을 적다가 '이렇게 길게 써도 되나'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다는 점이 또한 오싹하다.
트위터 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트위터 인터페이스 자체가 글을 쓰는 중간에도 주의를 다른 곳에 빼앗기기 쉬운 구조여서 그게 필요 할 때가 있지만 지금처럼 생각을 기록하는 용도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 티스토리 일기장은 벌써 몇년째 사용중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에디터 모드에 들어오면 모든 화면이 글 쓰는 공간 외에는 여백일 뿐이라 훨씬 집중이 잘 된다. 적어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할 때는 이렇게 집중해서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글을 쓸 때는 음악조차 듣지 못한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수준의 모노 테스커이자 내향적인 인간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