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너무 길다. 너무너무 길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 나에게 있어 독일의 겨울은 겨울같지도 않다. 그냥 구린 날씨가 지속되는 상태의 또다른 계절이다. 한국에 살 때는 겨울을 진짜 좋아했다. 겨울에 빛을 발하는 온갖 분식과 간식류 너무 사랑하고, 귤을 박스채로 먹을 수 있는 계절이고, 방바닥은 뜨끈하고, 공기는 청량하고(이젠 더이상 아니지만) 눈이 오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잖아. 물론 운전을 하는 지금은 눈이 오면 약간 근심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다. 특히 눈 오는 것을 방안에서 바라보는 게 좋은데, 고양이들이 창문틀에 앉아서 눈을 잡고싶어 우왕좌왕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서 더더더욱 좋다. 이 비참한 지경의 독일 겨울 날씨도 눈이 오면 약간 덜 증오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눈이 진짜 안오는 비교적 온난한 대 평야의 지대. 따라서 어둡고 칙칙축축하고 음산한 날씨가 쭈우욱 이어진다.
이번 겨울 들어 대부분의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보내니까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아무리 신경을 쓰고 자세를 가다듬으려고 해도 바른 자세로 있는건 통합 10분도 안 될 것 같고 나머지 7시간 50분은 꾸부정한 채 모니터에 얼굴이 빨려들어가는 형태로 최대한 굽어 있다. 사무실에서는 그나마 외장 모니터도 있고, 의자도 사무용이라 괜찮은데 집에서는 식탁 위에 노트북 받침대를 두고 식탁 의자에서 일하거나 논문을 쓰니까 더 심각하다. 저녁이 되면 온 몸이 너무 아파서 운동을 꼭 해줘야 하는데, 예전에는 스트레칭만 해도 좀 나아졌다면 이제는 웜업-유산소나 웨이트-스트레칭 패턴이 몸에 익어서 그런지 이 풀 패키지를 하지 않으면 딱히 풀리는 것 같지 않다. 운동을 하고 나면 온 몸이 아픈 것은 비로소 좀 나아지고, 목과 어깨만 아픈 상태가 된다. ㅠㅠ
운동은 거창한 목표 없이 그야말로 내일도 앉아서 일해야 하는 나를 위해 덜 아프기 위해서 하는건데, 워낙 꾸준히 하다보니 스스로의 몸에 대해 깨닫고 배우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뭔가 느끼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동영상의 트레이너가 알려주는 동작을 따라하기에 급급했다. 동작이 익숙해질 때 쯤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나 체크하며 하기 시작했고, 바른 자세로 운동을 하면 훨씬 더 힘이들고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직접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수백번을 되풀이한 동영상인데도 예전엔 들리지 않았던 현재 느껴야 하는 근육 부위에 대한 정보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년 전에 배운 해부학 지식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해당 근육을 내 몸에 프로젝션해서 상상하며 운동을 하고 있다. 가끔은 인지를 해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데, 이번 경우가 그런 것 같다. 이 운동을 할 때는 허벅지 바깥쪽 근육과 힙플렉서가 늘어나는 것을 느끼세요! 라고 트레이너가 말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아 여기가 지금 열일하고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것이다. 같은 동작을 수백번 되풀이한 과거에는 거기에 근육이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했었다. 물론 뻐근함 정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동작은 지식이 없을 때도 느낄 수 있지만 특히 가벼운 웨이트만 들고 하는 상체 운동 같은 경우는 세세한 차이를 느끼기가 어렵다.
똑같은 이유로 요즘 스트레칭도 되게 재미있어졌다. 특히 목 스트레칭 같은 경우는 직업병 덕분에 하도 해당 부위 해부학 그림을 많이 봐서 상상력이 더욱 디테일하므로 진짜 재밌고, 상상하면서 효과적으로 각 근육을 늘려주고 풀어주니까 짧은 시간에 더 효과적으로 스트레칭이 가능하다. 그리고 비록 집중하는 부위는 달라도 운동을 거의 매일 하다보니까 뭉친 근육이 잘 안풀어져서 아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더 쉽게 내 몸 어디에 어떤 모양 근육이 있는지 잘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내 몸에 대해 파악해 가면서 샤워 또한 더 좋아졌다. 샤워 도중에 마사지나 브러쉬질 포인트 잡아 하고 나오면 세상 개운하다. 눈도 더 잘보이는 느낌까지 든다. 이 좋은걸 왜 그 전에는 몰랐을까 싶다. 그런데 아마 일 하는 것으로 통증을 느끼는게 나이탓도 없지는 않을테니까 이전에는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강철로 만든 기계도 철저한 관리 없이 30년 넘게 쓰면 만신창이일텐데 고작해야 칼슘, 콜라겐, 물, 섬유질 같은 것으로 구성된 몸이 관리도 없이 제대로 작동해주길 바랄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즘 기름칠 하는 기분으로 지방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