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래간만에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비췄다. 비가 안오는 것이, 노란 햇살이 발코니에 드리워진 모습이 반가워서 논문 쓰다가 잠시 쉴 겸 발코니를 쓸러 나갔다. 너무 춥지도 않고 하늘도 바람도 기분좋고 깨끗해지는 발코니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앞 집에서 언성을 높여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집은 항상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있는데, 겨울동안은 창문을 항상 닫고 있어서 듣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듣는 것이다. 저 집은 또 시작이네, 라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알 수 없는 묘연한 우울감이 들었다. 가까이 있는 집인지 싸우는 소리를 잘 듣고 있으면 몇 가지 들리는 단어가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내용을 파악 할 수는 없다. 소리를 지르는 여자분(항상 여자분 소리가 울려펴진다)은 늘 흥분과 분노 상태라서 발음이나 어휘구사가 정확하지도 않고, 정확하다 해도 내가 남의 싸우는 것을 알아 들을 만큼 독일어를 잘 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사롭고 평화로운 발콘이 순식간에 그냥 독일 겨울의 한 풍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독일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인해 불편함을 겪으며 이방인으로 이렇게 쭉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회사에서는 영어가 부족해서 힘이 들고, 생활에서는 독일어가 부족해서 늘 아쉬운 상황이 많다. 팀 회의를 할 때 새로 들어온 파견직 사원이 유창하게 소개를 해서 부러웠다. 자기 소개 정도야 나도 유창하게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원어민의 어휘력은 따라 갈 수 없고, 그러다보니 나의 인간성은 배제한 채 정말 필요한 말만 하게 된다. 사실 아직 잘 모르지만 그 사원이 하게 될 일을 보면 아무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 오히려 전문적인 일임에도 자신감이 뚝뚝 떨어진다. 내 가치를 잘 어필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에 조바심이 나서 그럴 것이다. 좀 더 우울했던 지점은, 그 파견직 사원과 곧 파견직 형식으로 계약 할 나를 제외한 정직원들은 모두 백인이라는 점이었다. 우연한 타이밍이겠지만 백인-백인이 아닌 혼혈이나 아무튼 외모가 구분되는 사람들은 다 나가거나, 팀을 이동하거나 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미국, 독일, 러시아, 캐나다 오피스에 있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콜라보 하는 형식인데도 이 부족한 다양성이라니. 서글프다.
무거운 과제는 아직도 잔뜩 남아 있고 나는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 답답하고 의기소침해지는 때이다. 이런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데 딱히 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사회생활 같은 것은 때려치고 고양이들이랑만 부대끼며 정원 가꾸고, 가라지에 공방차려서 만들고 싶은 것 만들면서 돈은 온라인으로만 벌면서 느긋하게 살고 싶다. 문제는 당분간 나 말고는 풀타임으로 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날이 올 수는 있는건지 묘연 할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딱히 불편한 사람은 없고, 나도 그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지는 않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