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단백질과 지방에서 나오는 고소하고 풍부한 감칠맛을 사랑하지 않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맛있게 조리한 고기를 양 껏 먹고 나면 느껴지는 행복한 기분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즐거움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즐길 수는 없게 되었다. 내 소화기관이 그걸 감당하기에는 약해졌고, 또한 몰랐던 것을 아주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 억울하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고 많이 먹기는 했지만 공장식 도축 시스템을 만든 것은 내가 아니고, 그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도 내가 아니다. 내가 이런 산업이 발전하는 데에 조금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나는 채소만 먹고도 잘 살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에 오기 전까지는 동물성 식자재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동물을 식용으로 사육하고 도축, 판매하는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동물들을 괴롭히면서 소비자에게 필요이상으로 많은 양의 고기를 공급하지 않았더라면, 이 지경까지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소비자, 즉 나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동물성 제품의 소비가 나에게 잇점보다 실을 많이 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고, 이런 산업을 더 키울 필요는 없다는 것에 크게 공감한다. 따라서 나부터 소비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시도도 했다. 북유럽을 여행하던 3주간,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았다. 네번정도 생선을 먹기는 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고기 뿐만이 아닌 계란, 유제품과 같은 동물성 식품을 전혀 쓰지 않은 비건 음식만 먹었다. 북유럽이란 정말 진보적인 공간이라서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가격이 유별나게 비싼 것도 아니었고, 아니 오히려 고기가 들어간 것보다 싼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대부분의 가게에서 들어간 소스, 재료를 상세하게 써 놓았을 뿐 아니라 비건인지 베지테리언인지 구분까지 친절히 따로 표기 해둔 곳도 많았다.
그리고 집에서 요리를 할 때는 많은 비중으로 채소요리를 먹는다. 목표를 가진 운동성 이유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고기를 손질하고, 조리하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채소는 한 번 사두면 냉장고에서 일주일은 놔둬도 신선한데 반해서 고기는 사고나서 바로 먹어야 하고, 손질이나 조리도 따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집안일을 한 단계 추가하는 격이 되어 버린다. 그러한 수고를 감수하면서 까지 먹을만큼 맛있는 고기를 살 수 있지도 않고, 비용도 더 많이 드므로, 한 끼 때우기 위한 덮밥, 볶음요리, 파스타 등은 채소만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직접 요리를 하다보면 채식의 잇점은 꽤 다양하게 많이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동물성 재료나 조미료를 쓰지 않아도 맛있게 하는 방법, 또는 오히려 더 맛있게 하는 방법이 꽤 다양하다. 한국요리 또한 계란정도만 양보하면 얼마든지 채소만으로도 훌륭한 식사를 만들 수 있다. 김밥, 두부가 들어간 찌개류, 전, 채소 볶음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친한 친구들 중에 채식주의자, 비건들도 있다. 외에도 무슬림인 친구들은 외식 할 때 제약이 많은 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채식을 겁내지 않는 편이 살기에 훨씬 편하다. 식당에서 고기는 빼고 조리해 달라거나, 베지테리언 메뉴가 뭔지 물어볼 때는 어쩐지 더 지적여 보이기까지 한다.
수 많은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소비량을 줄이려고 분명히 신경은 쓰고 있지만, 그건 콜레스테롤이나 인스턴트 음식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레벨이다. 그 이유는 역시 환경을 위해 문화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 지역마다 가진 지혜롭고 신중하게 발전해 온 전통 음식 중에 고기를 이용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 것은 그 곳의 사람들이 계승받고 지켜온 식문화다. 그렇게 발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또 그래서 다른 곳에서 맛 보지 못할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난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정말 많고, 하나씩 방문해서 경험해 보고 싶은데 그 곳에서 발전시켜온 훌륭한 레시피의 맛을 보지 못한다면 정말 끔찍하다. 그래서 섣불리 나의 '신념'이란 것을 채식을 하여 환경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틀지를 못하겠다. 물론 다양한 대안들이 존재하지만, 닭갈비를 닭대신 두부를 써서 같은 양념으로 조리해도 분명히 맛이 있겠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니까.
그래도 역시 소비는 줄여야 한다. 오늘 냉장고를 비울 겸 부대찌개를 간만에 해 먹었는데 먹을 땐 맛있었지만 다 먹고나니 밤 내내 배가 너무 아프다. 내 몸을 생각해서라도 고기를 덜 먹고, 특히 가공육은 좀 멀리하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