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같이 요리를 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요리를 했다.


요즘은 너무 더워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동남아 사람들이 왜 외식을 많이 하는지 공감할 수 있는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가스불을 켜고 요리를 하면 집안이 너무 더워지고, 집안 온도가 올라가면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

또, 여름에는 재료나 요리를 냉장고에 보관해도 쉽게 상한다.

집에서 함께 끼니를 해결할 때가 주 2-3회 정도로 적다보니 요리보다는 외식을 택해왔다.


외식비용은 둘이서 적게는 1만원, 대부분 1만 5천원 선에서 해결하고, 고기를 먹거나 할 땐 5만원까지 쓴다.

마트에서 장을 한번보면 채소 위주로 3-5일치 식재료를 산다고 했을 때 3-5만원정도 든다.

차이가 없는건 아니지만 이런 저런 수고를 생각해 봤을 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어제는 요리를 했다.


큰덩어리가 5-6개 들어있는 호주산 소등심을 사와서 구웠다.

향이 좋은 버섯도 참기름에 볶았다.

고구마순이 먹고 싶어서 사다가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들꺠와 함께 볶았다.

도시락 반찬용으로 메추리알을 간장에 졸였다.

양배추와 예전에 사둔 햄, 언젠가 보관해둔 양파 반쪽을 채썰어서 코울슬로를 만들고,

면조가 싼 햇감자를 한박스 집어 사왔는데, 그 중 몇개를 꺼내 삶아 감자샐러드를 만들었다.


구운 소고기와 버섯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오늘은 오전 스케쥴을 멋대로 캔슬하고, 늦잠을 잤다. 

일어나서 웃긴 동영상을 보면서 집중 없이 일을 좀 했다. (뭐 했는지 모르겠다.)

어제 만들어둔 감자샐러드와 코울슬로를 꺼내서 12시가 다되어 점심을 먹었다.

아빠가 만들어주신 살구쨈을 바른 토스트와 계란도 한장씩 먹었다.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렸다. 

요즘은 아이스커피를 내려서 먹고 남은 것은 스윙병에 보관해 놓는다.


천천히 먹으면서 어제 요리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매우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집안은 증기와 열기로 가득차서 주방 온도계가 31도, 습도 97%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같았다.

우리 둘은 대화도 거의 없이 요리에 집중했다. 주고받은 대화는 '간장 몇컵, 물 몇스푼, 소금 어디?'와 같이 꼭 필요한 정보 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먹을 것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간만에 '같이 살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것은 또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요 며칠간 남편한테 불만이 많았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당장 드러난 이유는 고독함이었다. 외로움도 아니고 고독했다.


우리에겐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상당수 있는데, 항상 그 해결책을 나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억울했다. 마치 나만 어른이고, 미성년자를 데리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개인문제를 핑계로 공동의 문제를 외면하면 안된다. 그럴거면 결혼은 왜했냐. 뭐 이런 생각의 흐름이었다.

물론 남편도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1차원적인, 그래서 내입장에서는 너무 성의없이 내린 결론처럼 느껴진다. 예를들어 이번달 예산보다 카드값을 많이 썼다면 다음달에 돈을 덜쓰자가 그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우리가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아낄 부분이 있었다면 아꼈을 것이다. 더이상 아끼려면 안먹든지, 보험같은 것을 다 해지하든지 해야하는데 항상 그 다음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기출문제 정답 찾는게 아니라, 해결책을 세워서 실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늘 교과에서 본 것 같은 피상적인 대답만 하는 놈이 제정신인지 의심이 간다.

물론 나는 더이상 아끼는 것은 의미없다 판단하고 외주나 알바를 찾는 편이다. 내가 이런 해결책도 있다고 제시하지? 그러면 남편은 어거지로 '그래 나도 찾아볼게'하고 지인에게 카톡으로 말 몇 번 걸고 잡담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게 일거리를 물어다 주지 않는다. ㅋㅋㅋ 수년간 봐와서 안봐도 블루레이임. 그가 성공적으로 완료한 일거리 몇개는 내가 물어다 줬었다. 그래 내가 어미새가 맞나보다.


나는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고쳐가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이미 다 큰 성인을 어떻게 교육하기도 어렵겠지.

차라리 내가 능력이 좋고, 우리가족 생활+양가행사에 대해 매번 고민 없이 카드 죽죽 그을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다. 그래서 마음약하고, 진취적이지 못한 내 남편이 집에서 맛있는 음식 만들어주고, 깨끗이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에 보람 느끼며 틈틈이 취미생활 및 일거리도 즐겁게 하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나는 뭐, 대우만 적절하게 받으면 일하는게 즐거운 사람이니까.

사실은 여기서 전제되어야 하는 '내 능력'이 형편없고, 그 형편없는 능력마저도 오롯이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시장상황에 빡쳐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이 요리를 하고, 마주앉아 저녁을 먹고, 맥주한잔씩 나눠 마시고, 빨래를 함께 널고, 내가 청소리를 돌리면 남편은 현관을 쓸고, 좁은 욕실에 번갈아 들어가 샤워를 하고, 에어컨 아래에서 재미있는 쇼프로를 다운받아 잡담하면서 같이 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회사에서 회의하는 수준의 열정으로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고. 이 것들이 내가 바라는 같이 사는 느낌이다. 그걸 함께 하기엔 너무나 바쁜 당신. 내앞에서 썩 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