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이고 확실한 스트레스 관리법을 가지는 것은 아마도 현대인이 갖춰야 할 미덕 중 하나가 아닐까.
난 갖추지 못했다.
사실 다른 것들도 별로.
크라잉넛 신보의 타이틀곡, give me the money 가사에서도 그러지.
참아내야해 노력해야해
근면해야돼 성실해야돼 부지런해야돼
말 잘해야돼 키도 커야돼 빽 있어야돼
게다가 착하기까지 해야해
난 이 중에 몇개나 해당될까?
참는거 못하고, 노력은 하기 싫고, 부지런한 체질이 못되고,
본가의 가훈이었고 평생을 통해 본보기를 보여준 아버지의 근면함과 성실함은 약간 배운 것 같고,
말은 필요한 말 전달은 할 줄 알지만 글쎄, 말잘하는 거 별로 좋아하진 않고,
키는 보통, 빽은 없고, 내 기준에선 착하게 행동하려고 하지만 남들 기분 별로 생각 못해주는 편이다.
최근에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정신적으로 바쁜 일 투성이라 기분전환 할 틈이 없는데, 일년 중 가장 스트레스 받는 시기인 명절이 돌아왔다.
보고 싶어도 한달 내내 짬을 못내서 못보던 영화가 내일을 마지막으로 볼 수 없길래 몸이 아픈 면조와 함께 꿋꿋이 보러갔다.
도대체 한달 내내 영화 한 편 볼 수 없다는게 말이 되는 삶인가? 반성해야 한다.
놓친 것도 많다. 짐자무쉬의 새 영화, 스콜세지형의 새 영화, 기다려온 겨울왕국도 아직 못보고 있고,
영화를 스토리를 넘어 팬심으로 보는 내가 기다리는 감독과 회사의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중인데 내릴 때까지 극장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게 뭐야!!
아무튼 벼르고 벼르다가 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가? 어렵고 긴 번안제목의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배우 출신 벤스틸러가 감독했다고 해서 막연히 큰 기대는 안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와사비 덩어리 집어먹은 것처럼 코가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OST선곡도 너무 좋아서 속으로 따라부르면서 봤다.
학부 때 사진 수업 들을 때 역사시간에 슬라이드로 본 흑백 사진들이 눈앞을 스쳤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는 감동은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감동의 새로운 영역이라 생각했었다.
월터가 숀에게 인정받는 장면은 드라이하게 지나갔지만 또한 대단한 감동 포인트였다.
생각해보면 없으면 없는대로 놀면서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도 될텐데,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힘들어도 참아내면서 일하고, 사회의 구성원 코스프레를 하며 사는 것이 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누군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을 해냄으로써 인정받는게 그 시스템의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좋은 음악을 찾아 듣고, 공연 보고, 여행 다니고, 요리 하고, 영화 보고, 그 것도 모자라 시나리오까지 끄적대는 복잡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나는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그 것을 해소할 다양한 방법이 필요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큰 스트레스의 원인은 아마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 일은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대단한 포토그래퍼에게 인정을 받아내도, 새로 온 해고 전문가에게 인정받지 못해 직장을 잃거나 한다.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사회 전체에게, 대중에게, 신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그게 문제가 아닐까?!
SNS에 글을 하나 쓰고, 사람들의 반응을 두근대며 기다리는 시간은 물론 즐겁고, 댓글이 달렸을 때 작은 기쁨도 있지만 사실은 아무 글도 안쓰고 아무 기다릴 것도 없는 상태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이다.
고로 나는 욕심을 내려 놓는 연습을 좀 해야한다.
노자형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