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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시나리오 쓰기

새삼 느끼지만 인간의 문자란 것은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다.

떠도는 생각을 적당한 단어로 바꿔 노트에 펜으로 써보기만 해도 뭔가 정립이 되는 기분이 든다.


시나리오 쓰기는 사실 나같이 문학적인 소양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으로썬 도전같은 것이다.

소설도 하루키같은 비정통적(?)인 것들을 좋아하고, 시도 별로 안즐기고, 시나리오도 몇개 읽은 적 없다.

문학적인 토론을 해본 적도 없고,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머리속에 떠오르는 몇 안되는 '아는 사람' 중에서 골라야 할 판이다. -_-

스무살 때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쓴 아이디어 위주의 단편이 두개정도 있었지만 막상 워드로 옮겨지지도 않은 노트 수준이다. 따라서 이제 처음 시작하는 것이다.


목표는 딱히 높지 않고, 자기만족 수준의 글을 쓰고 싶다지만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가장 어려운게 자기 만족이 아닐런지……. 사실은 막연히 마흔 좀 넘어서 그간의 내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시나리오나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생각만하고 글을 쓰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불혹, 지천명을 넘어서도 잘 쓰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던 참에, 재밌게 본 영화의 감독님이 진행하는 시나리오 워크샵을 보자마자 신청했었다.

막상 써보니 '언젠가 써봐야지' 했던 생각은 진짜 순진한 생각이었다. -_-

당연하지. 이 것에 사활을 걸고, 평생을 연구하며, 이걸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장난으로 끼작대는 글은 그야말로 장난 수준이고, 이런걸 쓰려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 것이다.

엄청난 좌절 좌절 좌절, 난 왜 고등교육까지 받고도 이야기 하나 제대로 써내려가지 못하는거지? 싶은 마음.

어디가서 시나리오라고 소개하기도 민망한 단편을 두개 쓰고, 이제 장편을 써보려고 하는 친구 둘과 스터디를 매주 조금씩 진행하고 있다.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주인공과 조연들이 빚어내는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작업이 정말 어렵다.

아티스트의 마음가짐으로 '이해할 사람은 이해해봐'라는 작품보다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재미있어 하고, 이야기의 다음을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다보니 더 앞이 깜깜하다.

이미 취미생활 수준으로 작업해서는 얻을 수 없는 가치가 아니던가.


그래도 3주전까지 차근차근 잘 진행해 오다가 한동안 머리속이 너무 바빠서 시나리오 쓰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제 급 시간이 나서 진득하게 앉아 다시 쓰기를 시작했다.

트리트먼트까지 써보고, 등장인물의 전기도 쓴 시점에서 진행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Act1의 씬카드를 작성해야 하다보니 너무 부담스러운 점이 많았다.

요를이랑 노릉을 쓰다듬으면서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분석했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요를이랑 노릉을 쓰다듬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면 덜 도움되었을 듯)

아무튼 괴롭지만 어떻게든 써보려고 머리를 굴리다보니 해결책이 찾아지더라.

역시 뭐든 부딪쳐야 한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계적인 과정을 거쳐 나온다는 것이다. 글쓰기 또한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의 영역에 있다고는 해도, 코드를 모르고 연주할 수 없듯이, 빛을 이해하고 기계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이야기의 구조와 기승전결을 알고있지 않으면 글을 쓰기가 참 곤란한 것이다. 또한 음악도 미술도 창의적인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주 고된 훈련이 필요하듯 글쓰기 또한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찾는 훈련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것. 나만 어려운게 아니었고,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오랜만에 느껴보는 창작앓이는 나름대로 삶에 자극이 된다.

너무 못해서 짜증나지만 -_- (이 또한 서태지도 괴로워한 창작의 고통의 일부가 아닐지.)


그리고 또 깨달은 점은 한국말은 너무 쓸데없이 어려운 표현이 많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우리말로만 표현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아 한자어와 잘 버무려 사용해야 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캐나다에서 영어로 된 성경을 보고 쇼크 받았던 적이 있는데, 영어 성경은 정말이지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도록, 그 진리의 말씀을 쉬운 표현과 단어로 써놓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경은 난 한번도 이해한 적이 없을만큼 어렵고, 솔직히 말해 무슨말을 하고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웅변투로 설교하고.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이렇게 황폐해지고 미움받는 원인이 여기에도 좀 있지 않을까.


평범하지만 와닿는 이야기를 만들고, 쉽고 직관적인 표현으로 전달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힘내서 장편 한번 끝까지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