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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Visual Journal

이갈이중인 요를을 보며

7개월령에 접어드는 요를이 이갈이가 절정에 이르렀는지 요새 부쩍 예민하다.

물고 할퀴고 하는 정도도 심해져서 무척 괴롭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나도 이갈이가 당시의 나의 삶을 위협하는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이갈이 징후가 보일 때 집에서 아랫니에 실을 묶여 

모두의 비웃음 속에 이뽑힘을 당한 그날 이후 나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내 이빨이 흔들리는 것을 들키지 않을 것인가였다.

다행히 나의 요행은 성공적이었고, 놀랍게도 그 후로는 두번 다시 억지로 이빨을 뽑아내는 행위를 당하지 않았다.

보통 카라멜, 햄버거를 먹다 빠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나 하나 빠지는 이빨을 볼 때마다 

이번에도 무사히 자연적으로 빠질 때까지 들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듣기만해도 무시무시한 '치과'에서 '뺀치'를 이용하여 이빨을 뽑는 것이 실제 어떤 광경일지 나는 보지도 못했고, 상상도 하기 싫다.


어른들은 종종 겁을 주었다.

그런식으로 아픔없이 어른이 되려고 하면 덧니가 나는 것처럼 비뚤어진 사람이 될 거라고.

하지만 모를 일이다.

나는 아래쪽 앞니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스스로 이빨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음에도 덧니 하나 나지 않았고,

가끔씩은 쓰기만한 현실을 곧장 받아들이기 싫어 온갖 거짓말과 환상, 최면으로 현실을 도피한 적도 있지만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뚤어졌다는 평을 들은 적은 한번도 없다.


또 생각해보면 이빨을 미리 잡아 뽑아내지 않고 자연히 빠질 때까지 놔 두는 것이 결코 도피는 아닌 것 같다.

턱이 넓어지고, 내 평생을 함께할 영구치가 잇몸 아래에서 밀려나오면서 유치를 밀어내고, 

자기 역할을 다 한 유치가 헐렁해져 잇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현상은 모두가 겪는, 자연스럽게 디자인된 인체의 기능이다.

고른 이빨, 편의를 위해 아직 역할이 남아있는 유치를 잡아 뽑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이제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통증이 있는 순간들,

이를 테면 이갈이, 성장통, 예방접종, 첫 생리, 근육통, 첫 경험, ... 을 겪으며 나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통증의 정체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아직 끝난건 아니다.

아직도 무서운 하이라이트들이 남아있다.

사랑니(이건 아직 나지도 않았다. ㅠㅠ), 임신, 출산, 내시경, ...

겪어보지 않았기에 더 공포스러운 통증들을 겪어내야 한다.


게다가 마음의 통증도 남아있지 않겠는가.

실직,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와의 이별, 몸의 기능의 상실, 나의 죽음 ...

몸의 통증은 결국 다 좀 더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지만 마음이 허해지는 통증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

언제 닥칠지 모르고, 어떻게 닥칠지 모르니 더더욱 무섭다.


다행히 나에게 삶이 주어진 덕분에 맛볼 수 있는 통증과 아픔이란 생각도 든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사는 것이 만만해 질 줄 알았는데, 점점 더 겁쟁이가 되어간다.

언제쯤 어지간한 것에는 쫄지 않고, 여유와 풍류가 흘러넘치는 중년여성이 될 것인가?!

그리고 그 때쯤 되면 지금과는 얼마나 다른 글을 쓰고, 얼마나 다른 그림을 그릴 것인가.


기대가 된다.

무섭기도 하다.

누가 대신 해줬으면 싶기도 하고.

이대로 헬렐레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