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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나는 거짓말쟁이인가, 가벼운 정신분열증인가

어릴 때 나는 거짓말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물론 어린애들이 항상 하는 뻔하거나, 별 의미없는 거짓말 정도라고는 생각하지만,
엄마아빠에게 당장 혼나기 싫은 임시방편형 거짓말부터,
왠지 사실이 아닌 것이 말하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지장을 끼치지 않도록 지어낸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물론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거나 아무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어낸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거의 듣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시기 쯔음 깨달았었다.
그리고 내 거짓말이 다른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다면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다! 라는 생각을 해버렸던 것 같다.
(남들에게는 의미없는 허풍일지 몰라도, 엄연한 나의 창작물이 아니더냐)
그 순간부터는 나는 거짓말을 더 많이, 더 당당하게 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뭐가 진실이고 뭐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을 만큼
거짓말, 즉 내가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갔다.

지금은 딱히 뭔가 지어서 이야기하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
농담이나 장난으로 사기를 치는 때를 제외하고는.
가끔가다 나도모르게 아주 엉뚱한 거짓말이 진짜처럼 천연덕스럽게 흘러나오긴 하는데
대부분 아주 신경써서 거짓말 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있다.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조금조금씩 적어둔 '이야기'들을 훑어보면서
나는 어쩌면 내가 더이상 허무맹랑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억누르고 있는
나의 '거짓말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이런 픽션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사실을 말하자면 매번 글을 쓸 때마다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많은 위안(?)을 얻은 영화가
팀버튼의 '빅피쉬'였는데,
최근에 본 '뷰티풀 마인드'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나는 물론 어느 분야에서도 천재가 아니지만,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처럼 내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나의 거짓 경험들이 엄청나게 많고,
그들을 떼어 놓고서는 지금의 나를 결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그 거짓 경험들과 함께 해왔기에
나는 그 주인공에게서 엄청나게 많은 동질감을 느꼈고, 왜 끝까지 그가 환상을 보는지 이해가 되었다.

예전에 철학책을 보다가
'누군가가 와서 나를 발견하기 전까진 나는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라는 끔찍한 가설이 마음에 꽂혀 무서웠던 적이 있는데,
곧이어
'그렇다면 만약에,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도 내가 실재한다면,
사실상 실재의 이유나 목적이 없는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아마도 어릴 때의 나, 혹은 존 내쉬처럼 다른 차원의 실재하는 것들을 만나고 있지 않을까?
내가 창조한 환상이 사실은 다른 차원에 실재하여 나를 지각하고, 나는 그로 인해 언제든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릴 때는 참 이런 저런 공상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요새는 게으름은 실컷 부리면서도 이런 재미난 생각을 별로 안한다.
스마트폰을 사서 매달 얼마를 통신비로 지금보다 더 지출하게 된다면,
생활비의 어디서 그 예산을 빼내 돌려 막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뿐 ㅡ.,ㅡ
막상 사게되면 무슨 어플을 깔아서 뭘할까 하는 생각 땜에
내 차원과 존재에 대한 고찰은 더더욱 하기 어려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