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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일지라도...

청소년시기엔 그나마 넘치는 포텐샬에 무식이 약이었지.
요새는 순간순간 앞이 캄캄한 현실이 가시적인 듯한 기분이 들어 우울하다.

이십대 중반.
이제 막 대학에서 나와서 사회에 들어온 아이들이 나와 내 친구들의 현재 상태이다.
각자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로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다.
그렇다고 남을 탓해봤자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결국 임시방편의 자위법은 '나보다 심각한 케이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
다행스럽게도, 그런 케이스는 항상 주변에 존재한다.
즉 지척의 찌질이들을 안주삼아 뜨거운 커피 한잔 하고 나면 좀 위로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예술가가 아직 되지 못한 이유는
일단 재능이 부족하고,
예술을 안해도, 다른 일을 해서 빌어먹을(욕이 아니고 '빌어서 먹을') 어느 정도의 재주를 가졌으며,
일을 하지 않고도 생활과 예술을 동시에 즐길만큼 용돈을 주는 부자 부모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애써서까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인 분야의 직업군을 가진 사람 중 한명이다.
이론가들이 떠드는 '진정한' 디자이너는 못 될지 몰라도 디자인 작업을 본업으로 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항상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면서 살고 싶다.
그러면서 돈도 많이 벌고 싶다.
그러면서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도 챙기고, 여가 생활도 누리고 싶다.
남이 가지지 못한 능력으로 우러러 보이고도 싶고,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 딸은 잘나가는 디자이너라고 자랑하셨으면 싶다.
하지만 실력과 경험은 부족하고, 항상 내 잠재적 능력보다는 한계를 더 쉽게 파악당한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실력과 경험이 맘처럼 죽죽 늘어나 주지도 않는다.
실력과 경험이 쌓여도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지만
수능 공부할 때도 그렇고, 수많은 어려운 과제를 할 때도 그렇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면접, 졸전을 할 때도 그렇고,
결국 아무도 나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까.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다.

다이어트를 할 때 아주 미묘하게 밖에는 변화가 없는 저울의 눈금에 희망을 걸듯이
열과 성을 쏟아 만드는(낳는) 작업들에 희망을 거는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공을 들이면 들일 수록 일은 쉬워지고 작업은 멋있어진다.
이게 유일한 희망이랄까!

아오~~~ 시안 만들기 싫어 ㅠㅠ